[기고] 문재인케어의 희망고문… 언제 멈추려나

입력 2019-05-26 17:17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 환우회를 이끈 지 10년이 됐다. 다발골수종 환자 혹은 보호자들과도 제법 익숙해 졌지만, 아직도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밤늦게 오는 전화는 덜컥 겁부터 난다. 다발골수종 환자들은 치료제가 잘 듣는 동안에는 일반인과 다름없는 생활이 가능하지만, 내성이 생겨 약이 더 이상 효과를 못 보는 경우에는 질환 특성상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진다. 치료 실패와 재발과정에서 환자들은 생사를 오가는 극한 상태의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다발골수종환자들은 전체의 54% 이상이 재발을 경험한다. 3년 전 환우회원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이지만, 대부분 초기 환자들이 설문에 응한 것이기 때문에 실재적으로는 더 이상의 환자들이 아마도 재발을 경험하고 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재발은 환자들의 신체·정신적 고통과 경제적인 부담으로 결국은 메디컬푸어로 가게 된다. 이러한 환자들을 위한 치료보장성의 핵심은 재발 후에 바로 쓸 수 있는 약을 선제적으로 갖추는 것이다. 해외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신약들이 빨리 국내에 도입되어 보험급여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다발골수종의 환자들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애써준 정부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한편, 비급여 기간을 줄이는 효과를 입증한 암환자 보장성강화 정책인 위험분담제도(RSA)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좋은 취지와 효과가 있는 제도가 있음에도 어렵게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은 납득되지 않는다.

환우회 출범 이후 처음 건보 적용의 기쁨을 나눴던 약은 허가부터 등재까지 무려 50개월이나 걸렸다. 지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 일환으로 위험분담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 지면서 우리 환자들은 구사일생 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후 도입된 신약들의 등재기간은 29개월, 26개월, 22개월로 점차 단축돼 왔다. 올 해 4월에 건보 적용을 받는 4차 치료제는 14개월 만에 등재 됐다. 모두 위험분담제로 등재 된 약제다. 지난 5년간 이렇게 위험분담제는 분명 항암 신약의 건보 등재까지 기간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질환별로 이미 위험분담 약제가 등재되어 있으면 이후에 나오는 신약은 위험분담제를 활용할 수 없다. 이른바 선발 약제의 독점권 문제이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치명적인 부작용인 것이다.

복약 편의성을 크게 높인 신약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나온 신약의 독점권 때문에 암 환자들은 비급여로 신약을 쓸 수 없게 된다. 한 때 암환자의 희망이었던 위험분담제가 희망고문 정책으로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는 새로운 정책으로 실제적인 변화를 보여 주기를 바란다.

백민환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