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 A사는 스마트폰 앱으로 심방세동을 측정해 의사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진단기기를 개발했다. 유럽심장학회 학술대회에서 1위에 뽑힐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났지만 국내 출시는 못한 채 유럽시장을 공략 중이다. 생체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기능이 원격 의료에 해당돼 불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산업에 진입하는 것이 중국, 이집트보다도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기득권 저항, 포지티브 규제, 소극행정 등 3가지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2일 발표한 ‘미국·일본·EU 등 경쟁국보다 불리한 신산업 분야의 대표규제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진입 규제는 경쟁국들보다 매우 높다. 국제연구기관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는 한국의 진입규제 환경을 조사대상 54개국 중 38위로 평가했다. 미국(13위)과 일본(21위), 중국(23위)은 물론 이집트(24위)보다도 낮다.
대한상의는 신산업 기회를 가로막는 원인으로 가장 먼저 ‘기득권 저항’을 지적했다. 상의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와도 기존 사업자가 반대하면 신산업은 허용되지 않고, 신규 사업자는 시장에 진입조차 못하는 실정이라며 원격의료 금지, 차량공유 금지, 각종 전문자격사 저항 등을 예로 들었다.
시대착오적인 포지티브 규제도 여전한 문제로 꼽았다. 경쟁국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혁신활동을 보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해진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포지티브 규제로 혁신활동이 봉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DTC(Direct-to-consumer) 유전자검사 항목 규제가 대표적이다. 국내는 현행법상 체지방, 탈모 등과 관련한 12개 항목만 허용해오다 규제샌드박스 심사를 통해 13개 항목을 추가로 허용했다. 반면 영국, 중국은 DTC 검사 항목을 따로 제한하지 않고, 미국도 검사 항목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공무원들의 소극행정도 규제장벽의 요인으로 지목했다. 대한상의는 “기업인들이 느끼기에 해외 공무원들은 규제완화를 돈 안 드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라고 보는 반면 우리나라 공무원은 규제강화를 돈 안 드는 가장 확실한 대책이라고 보는 인식차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