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 피해자도 금지” 초강력 낙태금지법에 트럼프도 ‘움찔’

입력 2019-05-21 04:06
미국 인권운동가들이 19일(현지시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낙태금지법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앨라배마주 의회는 최근 성폭행에 따른 임신차 낙태를 금지하는 초강력 낙태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시위 참가자들은 앨라배마주 의회 청사까지 행진했다. AP뉴시스

낙태 문제가 2020년 미국 대선의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성폭행과 근친상간 피해자의 낙태까지도 금지하는 초강력 낙태금지법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입법화된 것이 발단이 됐다.

낙태 문제는 미국 정치권의 오랜 핫이슈였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여성이 임신 후 6개월까지 중절을 선택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를 인정한 1973년 연방대법원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보수 대법관들이 다수가 된 이번 연방대법원에서 뒤집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번지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성 유권자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초강경 낙태금지법안이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는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한다”면서도 “성폭행과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경우 등 3가지는 예외”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앨라배마 낙태금지법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낙태 반대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도 앨라배마주 법과는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여성 표심을 의식하면서도 보수 지지층의 이탈을 막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

앨라배마 낙태금지법은 임신 중인 여성의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다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을 더해 3대 예외조건을 제시하면서 유연성을 발휘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함께 뭉쳐서 2020년 생명을 위해 이겨야 한다”면서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하거나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생명을 위해 힘겹게 싸워 얻어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고 지지층에 결집을 호소했다. AP통신은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들고나온 3대 예외조건은 그의 중요한 지지기반인 많은 낙태 반대 보수층에서도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앨라배마주 법으로부터 거리를 뒀다”면서도 “앨라배마주의 낙태법이 도를 넘었다는 것을 시사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1999년 한 인터뷰에서 낙태 찬성 입장을 밝혔다가 낙태 반대 운동가들로부터 비판적 시선을 받은 적은 있으나 대통령 취임 이후엔 낙태 반대 관련 정책들을 펴왔다고 전했다.

공화당 소속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을 세우는 밋 롬니 상원의원은 CNN방송에 “나는 앨라배마주 법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성폭행, 근친상간,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의 낙태금지 예외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입장을 들고나온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성 대선 후보들을 중심으로 공격에 나섰다.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CBS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이 갖고 있는 ‘임신·출산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시작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질리브랜드 의원은 이어 여성 투표자의 급증 추세를 거론하면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은 폭스뉴스에 “앨라배마주 법은 위험하며 주류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