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안창홍(66)씨가 서울 종로구 북촌로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화가의 심장전’(6월 30일까지)을 하고 있다. 지하 전시장에는 분홍 심장이 푸른 가시에 둘러싸여 매달려 있다. 펄떡이는 심장은 작업 쓰레기를 재현한 입체 회화 속에도 있다. 사연은 이렇다.
작가의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는 물감, 붓 등 다 쓴 화구를 버리는 쓰레기통이 하나 있다. 분신 같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냥 모아두고 있었다. 7년 전쯤 이 쓰레기통을 열었던 작가는 물감 쓰레기 더미에서 붓을 잡은 백골의 손을 봤다. “환각을 본 것이지요. 백골이 될 때까지 이렇게 그림을 그리다 죽는구나. 이게 내 현실이고 내 미래이겠구나.”
개막식에서 만난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 영감을 얻었던 작업을 이번에 전시하면서 대형 부조 회화 연작으로 내놓았다. 쓰레기 더미에 투명한 레진을 부어 형을 떠서 그 환각의 순간을 간직한 것이다. 붓, 물통, 물감, 꽃 등이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에 붓을 잡고 있는 백골의 손을 추가했다. 또 백골의 손 대신에 가시덤불에 칭칭 감긴 심장을 넣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번 작업은 예술가로 사는 고달픔, 그럼에도 예술가로 사는 기쁨을 ‘화가의 손’ ‘화가의 심장’ 연작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작가는 실물 쓰레기통을 캐스팅해서 확대하고 변형을 가한 뒤 그걸 캔버스 삼아 회화적 칠을 했다.
“입체 회화(부조)는 입체 위에 색을 입히는 것이라서 평면 회화보다 육체적 노동이 곱절 들어요. 육체적 노동의 강도만큼 감동의 폭이 더 크게 다가갈 것입니다.”
실물 캐스팅을 가지고 여러 변주를 했다. 전체를 잿빛으로, 또는 황금빛으로 칠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잿빛은 작가로 사는 암울한 상황이, 황금빛은 상업주의에 물드는 작가 정신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황금=상업주의’ 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한 도식이란 인상을 준다.
과감하게 실물 쓰레기통 그 자체를 전시장에 가져왔더라면 관람객이 예술가의 삶을 상상할 여지가 더 풍부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