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정 확대, 경제 전반 구조개혁과 병행해야

입력 2019-05-20 04:04
내년 예산 510조원도 넘는 ‘초 슈퍼’예상돼…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 실패 교정 안 하면 재정건전성만 무너질 것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한번 ‘확장적 재정 기조’를 강조했다.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아직 국민이 전반적으로 삶의 질 개선을 체감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 재정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 관료들을 향해 재정 건전성에 집착한다고 질책성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9.7% 늘어난 470조5000억원이다. ‘슈퍼 예산’으로 불린다. 이런 분위기라면 내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은 물론 510조원도 넘어설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수출이라는 외발 엔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지금처럼 수출과 투자가 가라앉는 시기에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의 전통적 역할이 긴요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핵심들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재정만 투입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재정 만능주의 징후는 매우 걱정스럽다. 단기 경기부양을 하면서도 중장기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정교한 지출계획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소지가 많다. 더욱이 정부는 예비 타당성 사전 조사 등 재정의 기율을 유지할 핵심 원칙마저 약화시킨 상태다. ‘쓰고 보자’는 식으로 이뤄진 재정 낭비의 심각성과 기강해이는 일자리 안정자금 집행에서 생생히 드러난 바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이 경제 전반의 구조 개혁과 함께 가지 않으면 역효과만 낼 수 있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의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 개혁 등 구조 개혁이 재정 확대와 최소한 병행해서 이뤄져야 한다. 재정 투입 확대는 결국 민간의 고용과 투자가 늘어나는 선순환을 만들기 위한 마중물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민간 부문에서 만들어져야 효율성과 지속성이 높아진다. 이는 정부가 최저임금의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실패를 교정하면서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공부문의 규모 확대에도 전제 조건이 있다. 최근 국민일보가 주최한 제1회 국민공공정책포럼에서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에 앞서 임금체계 개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직무와 성과가 일치하는 임금체계 개편 없이 일자리를 늘리면 후유증만 일으킬 수 있다. ‘재정 투입-성장-세수 확대’라는 단순한 믿음만으론 부족하다. 정교한 정책설계와 집행이 전제되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만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