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는 16일 중국이 올해 3월에만 104억 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매도했다고 공개했다. 3월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 수입품 관세 인상을 선언하기 이전이다. 다만 104억 달러라는 숫자는 미·중 무역전쟁의 격화 분위기 속에서 큰 이슈가 됐다.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인 중국이 일거에 물량을 내놓으면 미국 국채 가격 하락, 시장금리 상승, 미국 경제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의 미국 국채 지분 삭감은 ‘핵 옵션’과 같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거 내던지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김윤지 선임연구원은 “과거엔 국채 물량이 나오면 바로 금리가 올랐는데, 최근엔 상관관계가 떨어지고 있다”며 “여러 장기적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함부로 쓰긴 어려운 전략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채 매도가 미국 금융시장에 흠집을 낼 수 있겠지만, 양국의 갈등 심화는 다시 안전자산 선호현상(미국 국채 선호)을 촉진해 결국 효과가 반감된다는 설명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를 ‘최후의 카드’로 꼽지만, 어쨌거나 양국의 긴장은 커지는 분위기다. 경제기관들로부터 ‘더블딥’(경기침체 후 회복하다 다시 침체) 판정을 받기 시작한 중국은 점점 예민해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5일 ‘아시아 문명대화’ 연설에서 “국가들이 외딴섬으로 후퇴한다면 문명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의 협상 태도를 비판한 말이라는 해석이 쏟아졌다.
미국과 중국의 거센 충돌은 한국 경제의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 무역전쟁 여파를 절실히 체감했다. 대중(對中)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하반기 8.2%에서 올해 1분기 -17.3%로 돌아섰다. 앞으로도 전망이 어둡다.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에 따른 중간재 수요는 꾸준히 하락했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내수용 최종재 수출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스마트폰 부품 공급업체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가장 먼저 꼽는다.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스마트폰의 최대 수출 상대국은 미국이었다. 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공급하는 국가는 한국과 대만이다. 스마트폰에 매겨질 높은 관세는 부품업체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등 대부분의 국내 정보기술(IT) 하드웨어산업이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간접적 심리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자동차·부품 업계는 직접 관세 대상이 아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가 오면 수요가 위축될 것을 우려한다. 한국무역협회는 미·중 무역전쟁 격화에 따른 한국의 수출 감소 전망치를 0.14%(8억7000만 달러)가량으로 추산한다. 무역협회는 “기업의 투자 지연, 금융시장 불안, 유가 하락과 같은 간접적 영향을 감안하면 추정치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1분기 역성장 충격을 겪은 한국 경제는 ‘상저하고’의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불확실성이 해결되고 수출 효자종목인 반도체 가격도 회복될 것으로 본다. 최근까지는 금융시장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은 그야말로 서명만 남겨두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씨티그룹은 양국의 무역전쟁 심화로 한국의 하반기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최근 전망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