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말썽꾼 오르반 반긴 트럼프… 일각 “독재행보 면죄부”

입력 2019-05-13 19:1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헝가리의 트럼프’로 잘 알려진 오르반 빅토르(사진) 헝가리 총리와 만나 회담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는 반(反)난민과 보호무역주의, 자국우선주의 등 여러 현안에서 ‘의기투합’하는 인물이다. 집권 시기를 놓고 보면 ‘스트롱맨’으로는 오르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선배’에 해당한다.

오르반 총리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 정상을 만난 건 집권 첫해인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21년 만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오르반 총리가 “9·11 테러를 자초한 건 미국”이라고 발언한 극우 성향 국회의원을 감싸줬다는 이유로 정상회담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2002년 실각한 오르반 총리는 2010년 2차 집권에 성공했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역시 극우 민족주의, 반서구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오르반 총리를 보이콧했다. 미국의 동맹국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정상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푸대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전임 대통령과 달리 오르반 총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2016년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유일한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이다.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승리를 확정하자 곧바로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오르반 총리를 미국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가 절반을 넘은 시점까지 오르반 총리의 방미는 성사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개인적 호감과 무관하게 그동안 양국 관계가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전임 행정부처럼 언론 자유 및 사법권 독립 침해, 반유대주의 조장 등을 이유로 헝가리를 비판해 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헝가리 정부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백악관과 국무부, 의회 등 다양한 채널에서 로비활동을 전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오르반 총리는 권력 독점과 언론 탄압, 노골적인 친중 및 친러 행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미 정치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이 오르반 총리의 독재 행보를 정당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짐 리시 상원 외교위원장과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위원장 등 양당 의원들은 헝가리 민주주의 퇴보 등을 이유로 회담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르반 총리를 음지에서 끌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역시 EU에 적대적인 두 사람의 만남이 탐탁지 않다. 유럽 언론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이라크로 날아간 사건을 미·헝가리 정상회담과 비교하며 ‘대서양 동맹의 위기’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평가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르반 총리 같은 권위주의 지도자를 환대하는 건 지난 수십년간 지탱해온 대서양 안보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악관 참모들도 비판 여론을 모르는 건 아니다. 백악관 고위관리는 폴리티코에 “헝가리는 훌륭한 동맹국”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헝가리 민주주의의 후퇴까지 용인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