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이 18일 선거제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내부 갈등만 드러낸 채 결론 없이 끝냈다. 당 지도부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잠정 합의안을 당론으로 정하기 위한 표결까지 추진했지만, 민주당이 “합의한 적 없다”고 밝히면서 무산됐다. 당의 진로와 손학규 대표 퇴진 여부를 놓고도 의원들의 불만이 속출하면서 ‘손학규 체제’는 취임 8개월여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의총장에서는 오전 9시 시작부터 이언주 의원의 입장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의원은 최근 손 대표를 향해 ‘찌질하다’ 등의 발언으로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의원은 자신의 입장을 막아서는 사무처 당직자를 향해 “나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야. 이러려고 당원권을 정지했느냐”고 고함을 질렀다. 의총 참석 자격을 놓고 오신환 사무총장이 “이 의원도 참석 가능하다”고 하자 김관영 원내대표는 “이 의원의 참관은 허락하겠지만 발언권은 없다”고 견제했다.
의총장에 들어온 이 의원은 곧바로 “당이 여당 2중대로 전락했다”며 손 대표의 퇴진을 촉구했다. 지상욱 의원도 “손 대표와 박주선 의원 등이 호남 신당 창당설에 대해 해명하고 각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임재훈 의원은 “이 의원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고 맞받았다. 박 의원도 “당대표를 흔드는 건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수사 대상자 중 판·검사 등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표결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의총 도중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기자들에게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줘야 한다는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내부 기류가 급변했다. 패스트트랙 추진을 주장했던 김성식 의원조차 “홍 원내대표 발언이 사실이라면 표결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3시간 30분간 이어진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조만간 민주당과 패스트트랙에 대한 최종 합의안을 문서로 작성해서 이걸 갖고 다시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지도부가 섣불리 의총을 소집해 분란만 노출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유승민 의원은 “이런 합의는 처음 본다. 바른미래당만 바보같이 이런 의총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내수석부대표인 유의동 의원조차 “민주당과 논의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이유로 이 안건을 의총에 올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당론 처리가 무산되면서 4·3 보궐선거 패배 이후 좁아진 지도부의 리더십이 더 축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른정당 출신 한 지도부 인사는 “이쯤 되면 패스트트랙 협상을 제대로 못해 당을 웃음거리로 만든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출신 지역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안철수 전 의원 측 인사 70여명은 오후에 회동을 갖고 손 대표 등 지도부가 사퇴하고 조속히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창당 주주인 유승민 의원과 안 전 의원이 다시 손을 잡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회동에서 거론됐다. 이태규 의원이 회동 결과를 조만간 손 대표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이종선 이형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