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문득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깊게 팬 주름은 무엇으로 그린 걸까, 피 뭉친 상처는 무엇을 덧대 만든 걸까, 조커의 찢어진 입은 어떻게 그렸을까…. 특수 분장의 세계는 이처럼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조금은 낯선 이 세상을 알차고 친숙하게 전해주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있다. 국내 손꼽히는 SFX(특수효과) 메이크업아티스트 퓨어디(본명 김도현)다.
“특수 분장의 매력은 누군가를 그 무엇으로든 바꿔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슬리퍼와 하이힐을 신었을 때 걸음걸이가 다른 것처럼, 분장에 따라 제스처와 성격도 달라지죠. 조각과 채색 등 여러 과정이 담긴 특수한 예술입니다.”
구독자 28만명을 보유한 퓨어디의 유튜브 채널 누적 조회수는 3200만회를 훌쩍 넘어섰다. 그는 영화 ‘겨울왕국’의 엘사, 마블 빌런 히어로 베놈은 물론 좀비 같은 괴이한 캐릭터까지 모두 감쪽같이 표현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리콘 같은 공업용 소재는 물론 젤리, 설탕 등 모든 재료가 소품이 된다. 작업과정을 세심하고 재밌게 그려내 낯선 이들에겐 친숙함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쏠쏠한 지식을 준다.
처음부터 유튜버를 꿈꾼 건 아니었다. 최근 서울 강남구 CJ ENM 다이아TV 라운지에서 만난 퓨어디는 “어렸을 적 넉넉지 않았던 가정환경이 아티스트의 길로 이끌었다”고 했다. 12살 때 동네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로 바닥을 쓸었던 게 시작이었다.
“늘 돈을 벌었습니다. 중학교 때 헤어미용사자격증을 딴 뒤 친구들 머리를 잘라줬죠. 자격증 시험에 신부 화장이 포함돼 있었는데, 그때부터 메이크업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이후 해외 대회에서 입상하며 돈을 모아 새로운 걸 또 배워나갔습니다.”
18살 땐 네일아트를 배우기 위해 혼자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어머니가 빚을 내 유학비를 보탰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그곳에서 원더걸스 등 연예인들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했고, 이상봉 등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에 참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 무렵 우연히 들른 한 회사에서 목격한 특수 분장의 특별함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2011년쯤 한국에 돌아와 뉴욕에서 모은 돈으로 토털 뷰티숍을 열었어요. 한 달에 3000여만원을 벌었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2년 정도 지나선 돈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걸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찾은 게 유튜브였어요. 한계 없이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이었죠.”
그에게 유튜브는 특수 분장처럼 가능성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유튜브를 발판으로 방송 출연을 했고 지난해 중국 영화 ‘여의주방’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한국 최연소 영화 특수 분장 감독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다채로운 가능성이 느껴졌다.
“제 덕분에 특수 분장사라는 꿈이 생겼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어 힘이 나요. 특수 분장 전시회를 열려고 계획 중이에요. 아카데미를 열어 특수 분장사가 꿈인 친구들과 호흡하는 게 큰 목표고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제가 원래 꿈이 엄청 많습니다(웃음).”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