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진퇴 문제가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여권으로서는 임명을 밀어붙이자니 야당의 반발과 부정적 여론이 부담되고, 임명을 철회하자니 검증 실패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청와대는 이 후보자 부부가 35억원대 주식을 보유한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도 지명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나 청와대의 지명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이 후보자의 적격성에 의문을 표한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곤혹스러워하며 일단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는 분위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도읍 한국당 의원과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은 11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이 후보자 임명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의원은 “전체 자산의 83%에 이르는 주식,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 자녀 증여세 탈루 의혹, 석사논문 표절 의혹 등에 대해 이 후보자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이 후보자는 지방대 출신, 40대 여성이라는 것 외에 자신이 헌법재판관이 돼야 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했다”며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등과 인맥이 있어 ‘코드’가 후보자 선정의 유일한 이유라는 확신만 심어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미선 구하기’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한 법사위원은 “주식 투자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어도 청문회 과정에서 헌법재판관으로서 별다른 기대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또 다른 위원도 “국민 정서상 주식 투자 규모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이해찬 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이 후보자의 거취 문제에 다소 유보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도 이 후보자의 거취 문제에 대해 유보적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서 주식 거래 내용을 검증했고, 불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며 “청와대의 인사 검증 7대 원칙 가운데 ‘불법적 재산증식’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계속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야당의 반대가 거세고 최정호·조동호 장관 후보자 낙마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 김연철 통일부·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 강행 등의 ‘인사 악재’가 겹치면서 더이상의 논란은 부담스럽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면 이 후보자의 거취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후보자는 아직 자진 사퇴할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가 “재산 관리를 모두 맡겼다”고 한 남편 오충진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재산 관리는 전적으로 제가 했다’는 글을 올려 보조를 맞췄다. 오 변호사는 “주식 거래 과정에서 불법이나 위법은 결단코 없었다”며 “부동산 투자보다 주식 거래가 건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후보자는 주식 애플리케이션도 모르고 어떻게 거래하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비판 여론에 맞서 남편이 ‘대리 해명’에 나선 것이다.
야당은 조만간 금융위원회에 이 후보자 부부의 주식 거래에 불법적 요소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의뢰할 계획이다. 야당의 수사 의뢰가 접수되면 금융 당국의 정식 조사가 불가피하다. 앞서 2017년 8월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던 이유정 변호사는 금융 당국의 조사와 검찰 수사 끝에 지난 3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