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스민 극장가, 여성 배우들의 힘찬 날갯짓이 시작됐다. 여성 주연의 색깔 있는 영화들이 4~5월 스크린을 수놓는다. 각 작품의 예산이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가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배우 김윤석의 첫 연출작으로 기대를 모은 블랙코미디 드라마 ‘미성년’은 네 명의 여성 배우가 극을 지탱한다. 드라마 ‘스카이캐슬’(JTBC)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염정아와 ‘더 킹’(2017)을 통해 주목받은 연기파 김소진이 지질한 중년 가장 대원(김윤석)의 아내 영주와 내연녀 미희를 각각 연기하는데, 둘의 팽팽한 긴장감이 극에 탄력을 붙인다.
영주의 딸 주리와 미희의 딸 윤아 역에는 신예 김혜준과 박세진이 발탁됐다. 500대 2의 경쟁률을 뚫고 배역을 꿰찬 두 사람은 안정적으로 제 몫을 수행해낸다. 김윤석은 “우리나라 여성 배우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회자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자신했다.
강예원이 원톱 주연으로 나선 ‘왓칭’(오는 17일 개봉)은 현실 밀착형 공포 스릴러다. 회사 주차장에서 납치당한 여자가 자신을 조여 오는 감시를 피해 필사의 탈주를 감행하는 내용. 주인공 영우 역을 맡은 강예원은 “이전에 출연한 스릴러물 ‘날 보러와요’(2016)에 비해 주체적이고 강인한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해숙은 전매특허인 모성애로 돌아왔다. 손호준과 모자(母子) 호흡을 맞춘 감성 드라마 ‘크게 될 놈’(18일 개봉)을 통해서다. 영화는 사형수가 된 아들을 살리기 위해 생애 처음 글을 배우는 까막눈 어머니의 애틋한 모정을 그린다. 김해숙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얼마나 숭고한지, 무심코 지나쳤던 그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5월 출격하는 영화들은 한층 다채롭다. 코미디 액션 ‘걸캅스’(9일 개봉)와 법정 드라마 ‘배심원들’(16일 개봉)이 관객을 만난다. 라미란과 이성경이 투톱으로 나선 ‘걸캅스’는 여성 중심의 서사로 꾸린 형사물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극 중 라미란은 결혼과 출산의 꿈을 접고 경찰서 민원실 주무관으로 일하는 형사 미영 역을, 이성경은 민원실로 발령 난 초보 형사 지혜 역을 소화한다.
문소리가 이끄는 ‘배심원들’은 20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 극 중 문소리는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강한 신념을 지닌 판사 김준겸 역으로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크린에 첫 도전한 박형식을 비롯해 배심원 8인과의 호흡도 돋보인다.
남성 위주의 영화계에서 설 곳을 잃었던 여성 배우들로서는 이런 흐름이 더없이 반가울 터다. 실제로 배우들도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염정아는 “여배우들끼리 ‘우리 진짜 할 거 없지 않냐’며 불만을 털어놓은 게 엊그제 같은데 최근 1~2년 사이 시나리오가 많이 달라졌다”며 “캐릭터가 확실히 다양해졌다. 선택의 폭이 늘어난 것이다. 정말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남성 위주의 장르영화가 지닌 획일성에 대한 식상함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인터뷰에서 만난 전도연은 “폭력성을 띤 남성영화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지 않았나 싶다. 서서히 다른 이야기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이 근래에 늘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