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 폐지·국경 폐쇄 독주하던 트럼프 “감속”

입력 2019-04-03 19:03
사진=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에서 면죄부를 받은 뒤 강하게 밀어붙이던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 폐지와 멕시코 국경 폐쇄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강경한 정책 기조가 자칫 2020년 재선 가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공화당과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강공에 대해 쓴소리를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보다 보험료와 공제액이 낮은 훨씬 저렴하고 유용한 건강보험을 개발하고 있다”며 “(보험에 대한) 투표는 공화당이 상원을 유지하고 하원을 되찾아오는 선거 직후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대선과 연방 상·하원의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는 2020년 11월 이후에나 오바마 케어를 대체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은 이제 곧 ‘건강보험 정당’으로 알려질 것”이라고 말하며 오바마 케어 폐지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 케어 폐지를 둘러싼 태세 전환은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저소득층의 표심을 잃지 않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케어는 약 3200만명의 보험이 없는 미국 저소득층을 건강보험에 가입시키고, 중산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정책이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것도 공화당이 오바마 케어 폐지를 밀어붙이다가 민심을 잃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공화당이 오바마 케어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것도 트럼프 행정부에 압박으로 작용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화당은 2020년 대선 전까지 건강보험 개혁 방안을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CNBC방송은 보도했다. 톰 리드 공화당 하원의원도 “공화당이 할 일은 건강보험 체계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고치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통령이 공화당 인사들의 경고에 귀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 폐쇄 방침도 속도조절하고 있다. 그는 백악관에서 “최근 멕시코는 중미 출신 불법 이민자들을 가로막고 있다”며 “그들이 계속 막아내는지 두고 보자”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어 “의회가 이민법 강화에 대한 합의를 하지 못한다면 국경은 100% 닫힐 것”이라고 했다. 이번 주 내 국경을 봉쇄하겠다는 이전 태도와 달리 강화된 이민법 통과라는 폐쇄 조건을 내건 것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대통령은 구체적인 (국경 폐쇄) 시간표를 정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 국경이 폐쇄되면 미국 경제에 역효과가 초래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 언론은 국경 폐쇄 여파로 양국 교역이 막히면 연간 1370억 달러(약 155조3800억원) 규모의 상품 교역이 타격을 입고, 미국에서만 500만개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 폐쇄 방침을 밝힌 뒤 미국에서 멕시코산 아보카도 가격이 34% 급등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멕시코는 2016년 기준 미국에 19억개가량의 아보카도를 수출했다.

백악관 고위관료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폐쇄 방침에 적극적으로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캐빈 하셋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은 국경 폐쇄로 멕시코와의 교역이 중단되면 미국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을 며칠 동안 설득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국경 폐쇄를 단행하더라도 상품 무역 봉쇄는 배제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