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500주년 다빈치 특별전, 이탈리아 아닌 루브르서 열리는 이유

입력 2019-04-06 04:03
프랑스 화가 도미니크 앵그르가 1818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죽음’. 프랑수아 1세의 품 안에서 최후를 맞는 다빈치를 그렸다. 앵그르를 비롯해 여러 화가들이 프랑수아 1세와 다빈치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다빈치의 임종 장면이다. 위키피디아

올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 만능 예술가, 과학자, 발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서거 500주년이 되는 해다. 올 초부터 세계 곳곳에서 다빈치 서거 500주년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하이라이트는 오는 10월 24일 개막하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다빈치 특별전(2020년 2월 24일까지)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다빈치 그림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은다는 점에서 세계 미술계와 애호가들의 기대가 높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이런 야심찬 다빈치 특별전이 열리는 걸까. 정답은 루브르 박물관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다빈치 그림 컬렉션을 가지고 있고, 프랑스인이 다빈치를 사실상 프랑스 예술가로 여기며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빈치는 프랑스에서 말년을 보냈으며, 무덤 역시 프랑스에 있다.

현재 다빈치의 그림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은 진위 논란이 끝나지 않은 8개를 제외하면 24개에 불과하다. 루브르 박물관은 다빈치의 회화 가운데 핵심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모나리자’ ‘성모와 아기 예수’ 등 6개와 드로잉 22개를 소장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과거 프랑스의 수많은 침략전쟁에서 얻은 약탈 문화재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모나리자’ 등 다빈치 컬렉션은 예외다. 당시 프랑스 왕인 프랑수아 1세가 다빈치의 그림들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교황 레오 10세는 다빈치를 왕에게 소개했다. 문화예술 애호가인 프랑수아 1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에 매료됐던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에게 프랑스행을 권유했다. 다빈치는 당시 61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함께 프랑스로 갔다. 다빈치의 짐보따리에 바로 ‘모나리자’ 등의 그림들이 들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년을 보낸 프랑스 클로뤼세성의 거실. 거실에 걸린 그림들은 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에 오면서 가져온 것들의 모작이다. 진본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클로뤼세성 홈페이지

프랑수아 1세는 자신이 거주하던 앙부아즈성 인근 클로뤼세성을 다빈치의 거처로 마련했다. 왕은 다빈치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앙부아즈성과 클로뤼세성 사이의 비밀통로를 통해 틈날 때마다 다빈치를 찾을 정도였다. 다빈치는 1519년 왕의 품에 안겨 편안히 숨을 거뒀다고 르네상스시대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는 ‘예술가 평전’에 쓰고 있다. 프랑수아 1세와 다빈치의 특별했던 관계는 프랑스 르네상스를 촉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후대 화가들의 그림 소재가 되기도 했다. 프랑수아 1세는 이후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메디치를 며느리로 맞아들이기까지 한다.

프랑스는 다빈치 서거 500주년을 앞두고 일찌감치 범국가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프랑스 관광청과 앙부아즈시는 다빈치가 프랑스에 온 지 500주년이었던 2016년부터 앙부아즈성과 클로뤼세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벤트에 돌입해 올해 1년간 정점을 찍을 예정이다.

특히 프랑스 문화부와 루브르 박물관은 이탈리아 문화부와 협의를 통해 이탈리아에 있는 다빈치 그림들을 대여받기로 2017년 11월 합의했다. 대신 프랑스는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장 라파엘로 서거 500주년인 2020년 프랑스가 소장하는 라파엘로 그림들을 로마 스쿠델리 델 퀴리날레 박물관에 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이탈리아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다빈치를 놓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이탈리아 문화부가 지난해 11월 다빈치 그림들을 루브르 박물관에 대여하겠다는 전 정부의 결정을 파기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루치아 베르곤초니 문화부 차관은 “다빈치는 이탈리아인이고, 프랑스는 그의 사망 장소일 뿐”이라면서 “다빈치 서거 500주년에 이탈리아가 프랑스의 들러리를 설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정부의 입장 변화는 지난해 이탈리아의 정권교체 이후 나빠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관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탈리아에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양국은 이민 정책과 유럽연합(EU) 재정 문제로 갈등을 겪어 왔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여러 번 공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살비니 부총리가 2월 초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대 지도부를 만나 유럽의회 선거 공조를 논의한 것에 대해 프랑스 외교부가 이탈리아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면서 양국 갈등은 2차대전 이후 최악으로 치달았다.

양국 관계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의 전화 통화를 계기로 풀리기 시작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5월 2일 클로뤼세성에서 열리는 다빈치 500주년 행사에 마타렐라 대통령을 초청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정부는 다빈치의 그림들을 루브르 박물관에 대여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양국 사이에 난민 문제 등 갈등 요소가 여전히 많지만 다빈치가 화해의 가교가 된 것은 분명하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