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사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퇴진을 선언했다. 전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주권 행사로 대한항공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데 이어 양대 항공사 수장이 모두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재벌가 ‘갑질 논란’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국내 항공업계를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 회장이 최근 불거진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사태 등과 관련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회장이 2018년 감사보고서 관련 금융시장 혼란 초래에 대해 그룹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그룹 회장직 및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등 2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달 22일 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 그 여파로 금호산업도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고, 주식시장에서 두 회사의 주식 매매가 22∼25일 정지됐으며 회사채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박 회장은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경영을 조기에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퇴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주주와 채권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퇴진이 임직원 여러분에게는 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모순에서 많은 고심을 했다”며 “그룹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를 시작으로 무리한 확장경영이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한 계열사 부담을 가중시켜 화를 자초했고 그 책임은 박 회장이 가장 무겁게 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금호아시아나는 2009년 워크아웃 신청 이후 경영 정상화를 위해 금호타이어 등 계열사를 정리하고 금호아시아나 사옥과 CJ대한통운 주식을 매각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미 떨어진 신용등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만 1조원 규모여서 각종 채권 발행 등을 계획하는 등 여전히 재원 마련 및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형편이다. 박 회장은 퇴진 결정 하루 전인 27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금융시장 조기 신뢰 회복을 위해 산업은행의 협조를 요청했다.
금호아시아나는 “당분간 이원태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를 운영해 그룹의 경영 공백이 없도록 할 예정”이며 “빠른 시일 내 명망 있는 외부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부 영입을 공언한 만큼 차기 회장은 전문경영인이 선임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당면한 경영 위기의 파고를 넘고 오너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빗겨가겠다는 복안으로 읽힌다. 궁극적으로는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3세 경영 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적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