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 같은 스타 작가도, 한국의 단색화 같은 ‘호객 장르’도 없었다. 그런데도 관성처럼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의 명망을 찾아온 관람객으로 넘쳤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홍콩 아트바젤은 뜨겁지도, 그렇다고 식지도 않은 ‘골디락스’가 된 느낌이었다.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27~28일(현지시간) VIP 오픈에 이어 29일부터 일반 공개된 현장을 다녀왔다. 세계 최정상 아트페어인 스위스 아트바젤이 아시아 미술시장 공략을 위해 홍콩에 설립한 이래 욱일승천하는 미술 장터이지만, 올해는 ‘호재 부재’가 뚜렷했다.
한국의 갤러리들은 ‘포스트 단색화’를 찾지 못하고 각개약진하는 양상이었다. 수년 전 “단색화 덕 제대로 봤어요”라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학고재갤러리가 신학철 강요배 윤석남 노순택 등 ‘범민중미술 작가군’을 내세웠고, 대구 우손 갤러리가 연필 작업만으로 신문지를 검게 도배하는 1970년대 실험미술 대표주자 최병소 작가를, 부산 조현 갤러리가 화사한 꽃 그림의 김종학 작가를 내세웠다. 리안갤러리와 아라리오갤러리, 국제갤러리, PKM갤러리 등은 뚜렷한 색채 없이 전속작가들을 나열했다. 요즘 한창 뜨는 리안갤러리 소속의 행위예술가 이건용 작가가 미국 페이스갤러리 부스에 진출한 게 그나마 눈길을 끌었다. 페이스갤러리 관계자는 “지난해 말 페이스갤러리 베이징 지점에서 전시해 반응이 뜨거웠다. 홍콩 아트바젤 소개는 처음”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위작 유통으로 홍역을 치렀던 이우환 작가의 신작도 페이스갤러리와 영국 리손갤러리에 소개돼 첫날 팔려나갔다.
외국 갤러리 부스에도 올해는 뉴스 메이커가 없었다. 지난해 ‘미술계의 악동’ 제프 쿤스의 팬미팅으로 달아올랐던 미국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는 미국 여성 조각가 캐럴 보브를 집중 조명했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세 번이나 초청받은 작가이지만 스타성 면에서 쿤스에 비교할 바 아니었다.
가장 화려한 부스는 역시 1위 명성의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였다. 수백만 달러짜리 ‘플라워’가 올해 최고가로 나온 앤디 워홀을 비롯해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 쩡판즈 등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이 총출동했다.
한국 갤러리들은 대체로 표정이 예전만큼 환하지 않았다.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은 “중국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분위기가 예년만 못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관계자는 “우리는 경기와 상관없다. 작년에는 제프 쿤스 때문에 작품 가격이 높았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또 다른 갤러리 대표는 “외국 갤러리의 들러리를 서는 기분”이라며 양극화 현상을 토로했다. 4000만~1억원 하는 부스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퇴’한 화랑도 있다. 갤러리엠 손엠마 대표는 “한국의 젊은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고 싶었다. 해외 유명 갤러리들은 억대에서 수십억원대 작가의 작품을 파는데, 우리는 비싸야 수천만원짜리 작품을 팔아서는 부스비 건지기도 힘들었다”고 철수 배경을 설명했다.
홍콩=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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