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나라 살림도 ‘확장’에 방점이 찍혔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국내 경기는 ‘둔화의 터널’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 상황은 더 나빠졌다.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R(Recession·불황)의 공포’가 퍼질 정도로 세계 경기 흐름도 좋지 않다. 나랏돈을 더 과감하게 풀어서라도 경기를 끌어올려야 할 시점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 예산의 뼈대를 ‘경기 부양’ ‘소득 양극화 해소’로 잡았다. 500조원을 넘어서는 대규모 예산을 편성할 가능성도 커졌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2020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 계획안 작성 지침’을 의결·확정했다. 내년 예산안 편성 지침은 경제 활성화와 저소득층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으로 ‘한국형 실업부조’ 사업을 내년부터 시행한다.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실업급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구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는 지난 6일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저소득층 구직자를 대상으로 6개월간 최저생계 보장 수준의 정액 급여(1인 가구 기준 월 51만2102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고령자를 위한 기초연금 확대, 고교 무상교육, 저소득층 학자금 지원, 청년 주거 지원 사업 등도 내년 예산안에 담길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용 한파’로 일자리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취약계층을 지원해 재정의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기재부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생애 주기별 특성에 맞춘 취업 지원 사업도 적극 발굴해 달라고 각 정부부처에 당부했다.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도 확대한다. 주민 체육시설 같은 생활 밀착형 SOC 투자, 노후 SOC 안전투자 등이 주로 이뤄진다. 올해 19조8000억원을 SOC 예산으로 배정했는데, 규모를 더 키워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두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혁신성장 우선 과제인 ‘4대 플랫폼’(수소·데이터·인공지능·5G)과 ‘8대 선도사업’(바이오헬스, 스마트팜 등) 예산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 중국과의 협력 사업 등 미세먼지 저감 투자에 들어가는 예산 규모도 커질 예정이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 지출’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녹록지 않은 대내외 경제 여건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2% 포인트 낮은 3.5%로 추산했다. 미국 성장세 둔화, 미·중 무역전쟁 지속 등을 하향 조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비롯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권고했었다.
내년 예산안 규모가 500조원을 넘어설지도 관심사다. 지난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 운용계획에는 내년 예산이 504조6000억원으로 반영돼 있다. 기재부 안일환 예산실장은 “올해 세수 여건, 재정 분권에 따른 각종 사업의 지방 이양(3조5000억원 규모) 등을 고려해 규모를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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