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불능력 대신 경제상황 고려… 최저임금 급격 인상 억제

입력 2019-02-28 04:03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이원화 등이 담긴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최저임금을 정할 때 고용·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내용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정부 개편안이 확정됐다. 기업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장치로 작동할 전망이다. 기업지불능력을 최저임금 결정 기준 가운데 하나로 포함해 달라는 경영계 요구안은 빠졌다. 하지만 고용·경제 상황을 통해서도 기업의 경영 여건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최저임금 결정구조는 이원화된다. 신설되는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폭 상·하한을 정하면, 결정위원회가 그 범위에서 이듬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노사가 서로 수용하기 힘든 안을 제시한 뒤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하다 막판에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지금의 논의 과정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객관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구간설정 단계부터 노사 갈등이 점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27일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기준을 전면 개편하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확정·발표했다. 최대 쟁점은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어떤 항목을 포함할지 여부였다. 지금은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최저임금 결정 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근로자 생활보장 측면에 치우쳐 있고, 기업의 수용 능력은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었다.

개편안에 고용·경제 상황을 추가로 반영토록 한 건 이 때문이다. 기업의 수용 능력을 감안한 것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되레 고용감소로 이어지는 역설적 상황을 막겠다는 정부 의지로 풀이된다. 구체적인 산정 방식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다만 경영계가 요구했던 기업지불능력은 최종안에서 빠졌다. 객관성, 구체성이 떨어지고 다른 지표와 중첩된다는 이유에서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해당 항목은 결과적으로 고용의 증감으로 나타나고, 기업 지불능력을 보여주는 영업이익 같은 지표는 경제 상황 지표에 반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는 구간설정위와 결정위로 나뉜다. 구간설정위는 9명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노·사·정이 5명씩 최종 15명을 추천한 뒤, 노사가 꺼리는 인물을 각각 3명씩 배제하는 방식이다. 구간설정위 중립성을 최대한 살린다는 취지다.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가 각각 상대측 전문가 3명씩을 배제하면 노·사·정 추천 전문가 비율이 2대 2대 5가 되면서 정부 입김만 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임 차관은 “정부는 노사가 모두 수용할 만큼 최대한 중립적인 인물을 추천해 중립성을 담보하겠다”고 말했다. 구간설정위는 최저임금 인상 범위를 정한다. 객관성을 갖추기 위해 고용률, 경제성장률, 산업별 영향 등 최저임금 관련 지표들을 상시로 살필 전망이다.

구간설정위가 생기면서 결정위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현재 27명(노·사·공 각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는 21명(노·사·공 각 7명)으로 줄어든다.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공익위원 7명 중 4명은 국회가 추천한다. 정부 몫은 3명으로 축소되는데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위한 차원이다.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에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일부 수용됐다. 개편안은 노동계 측 위원에 청년,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 대표가 1명씩 반드시 포함되도록 명문화했다. 경영계 측 역시 중소기업, 중견기업, 소상공인 대표를 1명씩 위원에 포함해야 한다. 그간 최저임금위 위원들이 대기업과 대기업 근로자를 대표하는 단체 출신이라 정작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최종안은 객관성, 전문성 제고라는 면에서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구간설정위 논의 때부터 노사 간 갈등이 더 격렬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최종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맡은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조만간 발의해 3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여야가 발의한 최저임금법 개정안만 70개가 넘을 정도로 의견이 다양해 국회 논의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세종=정현수 신준섭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