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젊은 성도들을 위한 배우자 기도

입력 2019-02-28 00:02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 중 많은 부분을 배우자 기도에 할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좋은 동반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 사실 연애를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던 설익은 소년의 마음이 더 컸습니다. 괜한 두근거림으로 배우자 기도에 골몰했습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배우자 기도를 할 때 불문율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조언입니다. 어떤 배우자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대로 응답하신다는 주장입니다. 젊은 성도들은 어렸을 때부터 기도원과 부흥회 혹은 예배시간까지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 겁니다. 여자친구는 없었어도 머릿속에 그려진 이상형은 있으므로 그 불문율을 붙잡고 열심히 기도한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기도하는 나의 위치가 바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했지만 나의 기도는 마치 하청업체를 대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주관이 가득 담긴 주문서를 하나님께 던져 놓고서 이 내용에 꼭 맞는 것만이 응답이고, 올바른 것이라며 하나님께 일방적인 명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뒤돌아보니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 모습 같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배우자 기도를 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차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스라엘 민족은 다음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특이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전쟁터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믿음 자체가 전투를 승리하게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삼상 4:3)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궤가 자신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고 믿었지만 올바른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전쟁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을 기뻐하시는지, 싫어하시는지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세속적인 야망의 전쟁을 이끈 것인지도 되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야망에 눈이 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이스라엘은 패배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 4:11)

결혼한 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 어린 시절 제가 했던 배우자 기도 역시 블레셋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가 아닌지 뒤돌아봅니다. 이 생각이 든 뒤로 저는 배우자 기도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닌 주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제게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배필이 제게 좋은 사람인지도 몰랐던 저는 자꾸 삶의 키를 쥐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삶의 방향을 알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습니다. 기도와 가치관이 바뀐 뒤 한 자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는 지금 저의 둘째아이를 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밖에서는 젊은 성도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삶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크나큰 축복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신 배우자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만 구합시다.

차성진 목사(양주 임마누엘 덕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