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檢, 무에서 유 창조하듯 300쪽 공소장 만들어”

입력 2019-02-26 19:45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보석 심문 절차를 마치고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구속 후 법정에 처음 출석해 작심한 듯 13분간 검찰을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쪽이나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보석 심문 기일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미리 준비한 원고 없이 3000자에 가까운 분량의 발언을 통해 검찰에 대한 불만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심문 절차가 마무리될 무렵 발언 기회를 얻어 “며칠 전에 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사람이 내가 수감돼 있는 방 앞을 지나가면서 이렇게들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대한민국 검찰이 대단하다. 우리는 법원에서 재판받고 있어서 법원을 하늘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검찰은 법원을 꼼짝 못하게 하고 전 대법원장을 이렇게 구속까지 시켰으니 정말 대단하구나’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 사람들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라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어 검찰의 수사 관행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정말 영민한 그리고 목표의식에 불타는 수십 명의 검사들이 법원을 샅샅이 뒤져 작성한 20여만 쪽에 달하는 증거서류가 내 앞에 장벽처럼 가로막혀 있다”며 “지금 내 몸이 있는, 책 몇 권을 두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그걸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약 30시간 동안 열람하기도 했던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내가 진술한 것이 원래 취지와 (얼마나) 달리 이해될 수 있는지 보고 깜짝 놀랐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쨌든 이 공소장에 대해서 저는 이제 대응을 해야 됩니다. 무소불위의 검찰과 마주 서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호밋자루 하나도 없습니다”라며 피고인 방어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검찰 측은 강력 반발했다. 박주성 검사는 “증거기록이 방대하다는 것은 그만큼 피고인의 범죄 혐의가 방대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것이 보석 사유나 조건에 해당하는 방어권 보장과는 관계없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증거기록이 방대하다는 것을 보석 사유로 드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1시간10분여의 심리를 끝내고 “적당한 시기에 결정을 하도록 하겠다”며 마무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석방 여부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결정될 전망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