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일제 강점기 성경에 입각한 신앙정신으로 민족을 깨우쳤던 ‘성서조선’ 영인본이 복간됐다.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는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학교회 소예배실에서 성서조선 영인본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영인본은 2017년 기념사업회 이사 5명과 홍성사의 송승호 편집자가 함께 작업을 시작해 완성했다. 성서조선 1~158호를 7권으로 나눠 편집했고, 4400여개 표제어를 수록한 색인집을 별도로 펴냈다.
이날 기념회에선 김교신 선생의 넷째딸 김정옥 여사가 유족대표로 감사 인사를 했다. 김 여사는 “아버지가 15년간 피와 땀으로 일궈온 영인본이 다시 출판돼 기쁨을 감출 수 없다”며 “기독교는 성서적이면서도 조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 평생의 지향점이었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당시 둘째 언니와 함께 아버지를 도와 봉투에 주소를 쓰고 풀로 우표도 붙이고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한자가 많고 표기법도 달라져 요새 사람들이 읽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신학을 배우고 목회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한 자 한 자 찾아가며 꼭 읽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서조선은 1927년 7월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은 김교신과 송두용 유석동 양인성 정상훈 함석헌 6명이 발행한 동인지 형태의 신앙잡지다. 1930년 5월호부터는 김교신이 발행인을 맡아 원고 집필과 편집, 인쇄, 발송사무와 수금까지 전담했다. 한국인이 쓴 성경 주석서가 없던 당시 김교신이 써 내려간 신구약 성서 개요와 성서연구 등은 목회자와 일반 성도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김교신은 일제의 끝없는 검열 때문에 항상 매 호가 마지막 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일제는 1942년 3월 1일자로 간행된 제158호의 권두언 ‘조와(弔蛙)’를 문제삼아 김교신은 물론 구독자들까지 일제히 검거했다. 김교신이 추위에 얼어 죽은 개구리들 사이에서 끝내 살아남은 두세 마리를 보고 “전멸은 면했나 보다”며 희망을 노래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로 인해 김교신 등 13명은 1년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당시 일본 경찰은 이들에게 “너희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잡은 조선놈들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부류”라며 “종교의 허울을 쓰고 조선민족의 정신을 깊이 심어서 100년 후에라도, 아니 500년 후에라도 독립이 될 수 있게 할 터전을 마련해두려는 고약한 놈들이다”고 퍼부었다고 한다.
이날 영인본 발간 특강을 한 이만열 교수는 김교신전집 중 이 대목을 소개하면서 성서조선 사건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영인본 복간이 지금 우리 시대에 주는 의미를 되짚었다. 이 교수는 “김교신이 말한 조선산 기독교란 조선인의 삶과 환경, 고민과 사상, 그런 문제의식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기초로 한 신학과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 앞에 놓인, 한국신학을 수립해야 한다는 과제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김교신 ‘성서조선’ 영인본 복간
입력 2019-02-27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