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타고 베트남 하노이로 출발했다. 중국 모처에서 비행기로 갈아탈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현재까지는 하노이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열차를 이용한 60시간 강행군의 배경에는 우선 할아버지·아버지인 ‘김일성·김정일 루트’를 따르며 자신의 결단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또 실무협상이 병행되는 급박한 상황인 만큼 통신시설이 완비된 전용열차에서 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한 방편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은 1958년과 64년 두 차례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모두 평양에서 베이징까지 열차로 이동했다. 이어 중국 항공기를 빌려 베트남으로 향했다. 김 위원장의 선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1년 2만여㎞를 이동해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2006년에는 중국 광저우·선전 경제특구를 방문하는 등 열차를 애용했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전용열차를 통해 장도에 나선 것도 선대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 관계자는 24일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과 달리 자신의 노선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며 “김 주석과 김 국방위원장의 루트를 따르며 자신의 행보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점도 전용열차를 사용한 이유로 꼽힌다. 북·미 양측은 하노이에서 언론을 피해 숨바꼭질하며 마라톤 협상을 벌이고 있다. 김 위원장이 1차 때와 같이 중국 항공기를 이용한다면 실시간으로 보고받기 어려울뿐더러 중국의 감청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통신·편의시설을 갖춘 ‘이동식 집무실’인 전용열차를 사용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한 상황이다. 전용열차에는 최첨단 통신시설과 침실, 집무실, 회의실, 경호요원 탑승시설 등이 완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협상이 조기 완료된다면 김 위원장이 김 주석처럼 비행기로 갈아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전체 이동경로를 밝히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보안 문제와 절차를 생각했을 때 전용열차로 하노이까지 이동하는 게 훨씬 수월한 면이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과 베트남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기 위해 전용열차를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개혁·개방에 성공한 베트남은 여러모로 북한의 롤모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하노이 도착 전 기차에서 내려 중국이나 베트남 주요 시설을 참관할 수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 위원장이 베트남 도착 전후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기업 베트남 공장을 방문할 경우 파급력은 배가 될 전망이다.
북·중 혈맹을 과시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중국은 북한 외 제3국 정상에게 철로를 비워준 경우가 없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의 뒤에 중국이 있다는 점을 보여줘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뜻이다. 귀국길에 중국 베이징을 들러 북·중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북한 입장에서는 60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이동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달리는 집무실’ 택한 김정은… 김일성 루트 따르며 전략도 수립
입력 2019-02-24 18:42 수정 2019-02-24 2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