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청교육연수원에서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장·노년층을 위해 마련된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이수자 854명이 늦깎이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그중 최고령자인 초등 졸업생 이순섬(92·사진) 할머니를 이날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만났다.
졸업식에 가기 전 졸업반 견학으로 이곳을 찾은 이 할머니는 “긴장해서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고 털어놨다. 한 번도 학교에 다니지 못한 할머니는 구십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 왔다고 했다.
그는 “학교 정문 앞까지 오빠들을 따라갔다가 발길을 돌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당시 부모님은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아들들만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할머니는 “또래 친구들이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부럽고 서러운 마음에 펑펑 울었다”고 회상했다.
못 배운 설움은 나이 아흔이 넘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3년 전 사회복지관을 찾아가 “학교에 가고 싶다”고 부탁했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그때부터 보조기구를 끌고 왕복 3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아픈 날에도 학교에 가기만 하면 씻은 듯이 나았다. 너무 좋았다”고 했다.
과학을 가장 좋아하는 이 할머니는 지난해 성인문해 시화전에 ‘고체 액체 기체’라는 제목의 시를 내 교육감상을 받았다. 그는 과학 이야기가 나오자 손가락을 꼽아가며 “고체는 지우개, 액체는 물, 기체는 공기”라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우리 아들들이 배운 걸 나도 배운다는 생각에 너무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교사들도 “특히 과학 시간이면 할머니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졸업식에서 우수학습자 22명 중 초등 대표로 교육감 표창장을 받았다. 교사들은 할머니를 두고 “너무 열심히 하셔서 걱정될 정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에는 출석일수 120일 중 105일을 채웠다. 건강이 걱정된 손녀가 등교를 말리면 가족이 잠자는 사이에 몰래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중학교도 가고 싶지만 내가 나이가 많아서 선생님들이 힘드실 것 같다”며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마지막까지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서울시교육청 문해교육 최고령 졸업생 92세 이순섬 할머니 “구십 평생 까막눈… 중학교도 가고 싶다”
입력 2019-02-2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