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방어권을 스스로 행사하며 재판을 주도하기 위해 법원에 조건부 석방(보석)을 청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누구보다 법리와 사법 절차에 정통한 그가 수사기록과 변론방향 검토 등을 이유로 불구속 재판을 요청한 게 직접 나설 뜻을 내비친 것이라는 얘기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오는 26일 오후 2시 보석 심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20일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이 법원에 제출한 보석허가 청구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보석이 필요한 사유 중 하나로 ‘피고인 방어권 행사 보장’을 들었다. 변호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기록을 충분히 살펴보고 변론방향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알려진 (수사)기록의 양만 20만쪽이 넘는 상황으로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지금 (피고인이) 구속돼 있어 실질적으로 이를 검토하기 어렵고 방어권 행사에 막대한 차질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선 ‘피고인의 검토’를 강조한 것을 두고 40년 넘게 법관 생활을 한 양 전 대법원장이 본인의 사법 전문성을 법정에서 발휘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본다. 수사기록에 대한 ‘공부’를 스스로 확실히 해둔 뒤 전·현직 법관들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을 때 직접 나서 ‘결백’을 입증하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제출하는 상당수 증거에 동의하지 않고 증인을 법정으로 일일이 불러 진술의 신빙성을 다툴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증인에게 묻기도 하면서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점을 입증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려면 수사기록 등에 대한 검토가 먼저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불구속 재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보석허가 청구서를 통해 주된 혐의인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재판 등에 개입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선 “대법원장에게는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법률상 권한이 없다”며 “법원조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판사무’는 재판업무 자체에 대한 권한이 아니라 ‘재판행정사무’를 의미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
불구속 재판 신청한 양승태… 스스로 방어권 행사 의도 분석
입력 2019-02-21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