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신중히 검토 중인 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 설치 방안이 북·미 간 공식 외교관계 수립을 향한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CNN방송을 비롯한 미 언론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고위 외교관이 이끄는 여러 명의 연락관이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해 평양에 파견될 것이라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락사무소는 현재 협상 국면에서 미국이 북한에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제안으로 평가된다. 미국으로서는 부담이 매우 큰 대북 제재 완화를 내주지 않으면서도 북·미 관계 정상화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카드다. 평양 연락사무소는 향후 비핵화 검증 절차가 본격화될 때 ‘전진기지’로도 활용 가능하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가 그때와 판이하게 달라진 지금까지 북한이 연락사무소 카드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중국과 베트남, 리비아 등 과거 적대국과 수교할 당시 연락사무소 설치를 발판으로 삼았다. 리비아의 경우 미국은 리비아 비핵화 선언 직후인 2004년 2월 트리폴리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했고 그 직후 연락사무소로 격상시켰다. 2006년 미·리비아 수교로 연락사무소는 그대로 대사관이 됐다. 연락관은 민간인 취급을 받는 이익대표부 직원과 달리 외교관으로서 면책특권을 인정받는다.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북·미는 25년 전인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관계 정상화를 위해 “양측은 상대방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고 합의했었다. 양측이 평양과 워싱턴에서 부지를 물색하고 초대 평양 연락사무소장이 내정되는 등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미국 외교관과 외교행낭의 판문점 통과 문제 등 쟁점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무산됐다. 2008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는 북핵 신고에 대한 보상으로 테러지원국 해제와 연락사무소 설치를 묶어서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 조야(朝野)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18일 트위터에 “1차 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작지만 기초적인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대량살상무기담당 조정관을 지낸 게리 새모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연락사무소는 미국 사찰단이 방북했을 때 작전기지로 활용할 수 있어서 실무적으로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미국으로서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도 평양 연락사무소가 필요하다.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는 미국은 지금까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 영사 업무를 맡기고 있다. 하지만 타국 대사관에 영사 업무를 위탁하는 것으로는 자국민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만약 평양 연락사무소가 개설될 경우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이후 취해진 미국민 북한 여행 금지령도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측 의향과 다르게 북한이 연락사무소 카드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초기 단계에서부터 수도 평양에 미국인 외교관이 오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 워싱턴의 높은 임대료도 북한엔 골칫거리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북한이 연락사무소 아이디어를 과거에 그랬듯 선뜻 받아들일지 확신할 수 없다”며 “북한이 가장 원하는 상응 조치는 경제 제재 해제지만 이는 미국이 가장 내주기 싫어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검토… 외교 정상화 신호탄 될까
입력 2019-02-20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