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북한에 심한 가뭄과 기근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소식을 듣고 워싱턴에서도 한인들이 힘을 모아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신속히 구호 물자와 기자재를 구입해 보냈습니다.
당시 모금과 구호활동을 하면서 복한 돕기에 헌신한 많은 미국인을 만났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십수년 동안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한국인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연고도 없는 벽안의 미국인들이 오래 동안 조용히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왜 북한을 돕느냐”고 물으면 거의 항상 왜 그런 질문을 하는 지 의아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헌신된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적인 양심대로 실천한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씩 만나 간증을 나눌 때마다 점점 더 미안해 졌습니다.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데 저토록 희생하면서 돌보고 있는 진정한 모습에 감사의 마음을 넘어 죄송하고 빚진 마음의 두께가 더해 졌습니다.
어느 날 결심했습니다. 한국인을 ‘자기 사람’으로 돌봐주고 미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말해주기로 했습니다. “내 사람들을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십명, 수백명에게 그 말을 해 주었습니다. 한국학 학자들, 민간구호요원들, 인권운동가들, 탈북자를 후원하고 구조하는 사람들, 미국 정부와 세계 각국 정부를 대상으로 북한과 관련된 정책 로비를 하는 사람들, 정치인들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감사를 전했습니다. 그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은 손잡고 감사의 말을 전하는 순간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인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처음입니다.” 빚진 마음의 겹이 더해졌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자기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날을 헤아리시면서 자신의 삶의 최우선 순위를 꼽으실 때 주님은 사랑하기를 찾으셨고 자기 사람을 잡으셨습니다.
그 분은 정의를 실천하는 것보다 사랑을 앞세우셨습니다. 불의를 청산하기보다 자기 사람을 챙기셨습니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역사의식도 시대정신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조급하고 긴급했습니다. 인류애도 아니고 보편적인 박애 정신도 뒤로 밀렸고 자기 앞에 있고 자기 곁에 있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 보였습니다.
우리에게 북한 동포는 자기 사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입니다. 더 큰 유익을 이룰 위대한 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식탁에서 먹이는 사랑입니다. 내 곁에 찾아온 "자기 사람"을 돕기 위해 내 손을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의 행위가 가장 소중합니다. 체제가 아니라 숨 쉬는 사람이 먼저입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더 긴급한 것은 허기진 자기 사람입니다. 마치 내일 내가 죽는다면 오늘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마지막 인생의 행위처럼 자기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주님, 북녘의 동포들을 우리처럼 먹이시고, 복음 전할 길을 열어 주옵소서.” 지금은 시한부 생명을 사는 사람처럼 ‘자기 사람’을 사랑해야할 때입니다. 주님이 심정을 헤아리면서 말입니다.
장세규 목사(미국 워싱턴 한몸교회)
[오늘의 설교] 내 사람 돌봐줘 감사합니다
입력 2019-02-20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