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대녕(57)이 5년여 만에 낸 신작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문학과지성사)는 재난과 폐허 같은 삶을 견디기 위해 읽어야 할 소설이다. 다소 초췌해 보이는 그를 최근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이후 나는 작가로서 ‘나의 죽음’을 경험했고, 더 이상 글을 못 쓸 거란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고백했다. 한 시대를 사는 인간이자 작가로서 절망감이 컸던 것이다. 그는 참사 이듬해 1월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대학에서 안식년을 얻어 캐나다로 떠났다.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는데 아무 의미가 없더라. 사나운 꿈에 계속 쫓겼고 급기야 호흡 곤란이 와서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해서도 한 달 내내 누워 지냈다”고 했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삶의 리듬을 조금씩 찾았다. 작가는 “우선 단 한 편의 소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맨 앞에 수록된 ‘서울-북미 간’ 바로 그 소설”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래프팅 사고로 딸을 잃은 K가 캐나다에서 H를 만나는 설정이다. H는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로 남편을 잃고 한국을 떠났다. H는 K에게 “제발 자신을 해치지 마라. 난 다시 K씨를 만나고 싶다”고 당부한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여러 재난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이 배어 있는 이야기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위한 소설을 써야 한다는 작가의 윤리적 소명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을 쓰고 나니까 비로소 작가로 다시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작가는 사회적인 존재이고 발화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1990년 등단한 윤대녕은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은어낚시통신’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대설주의보’ 등 20여권의 책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시원을 그리는 소설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세계가 급변했다. 90년대 초반 내가 일하던 사회과학 출판사에는 노동법 해설 같은 책이 트럭째 반품됐다. 노동과 민중 문제에 몰두하던 작가들은 ‘멘붕’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많은 작가들은 운동권 후일담 문학을 썼다. 작가는 “화두를 잃어버린 시대였고 나는 뭔가 새로운 걸 써보고 싶었다”며 “신화나 종교를 깊이 공부하면서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그가 2014년 대형 재난을 목격하면서 공동체로 시선을 돌린 듯하다.
2016년 발표한 장편 ‘피에로들의 집’(문학동네)은 실패한 연극배우가 가족 해체 등으로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살며 유대감을 회복하는 내용이다. 그는 “그 소설을 쓰는 동안 참사가 있었다. 사실 나는 소설 안에서 우주적 명상을 꿈꿨고 거기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다. 근데 세월호 참사와 ‘촛불 정국’이라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난 몇 년의 사회적 화염이 작가를 죽음과 공동체에 대한 고민 속으로 밀어 넣은 것처럼 보인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미투(#MeToo)운동’에 대한 공감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아파트 임대를 계기로 만난 두 여성이 겪는 가부장제적 폭력을 담고 있다.
작가는 “나는 남성들의 무의식적인 관습과 태도에 포함된 폭력성을 간혹 감지한다”며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 안에서 여성들이 상시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으로 구상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이름을 가린 채 읽는다면 작가의 성별을 여성이라고 단정할 만큼 이 소설에는 여성들의 공포와 불안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평소 그와 어머니, 누이들, 아내와의 유대감도 작용한 듯하다. 그는 “운 좋게 어머니와 누이들과 사이가 좋았다. 여성들을 이해할 계기가 많이 주어진 편”이라며 “거의 모든 남자가 여성의 손에서 길러졌는데 여성들의 고통을 잘 감각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쏟아지는 페미니즘 문학도 여성들의 고통에 대한 문학적 응답이라고 이해했다.
수록된 8편은 삶의 무기력과 재난을 담고 있지만 지루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환멸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내가 겪은 순간을 옮긴 듯 생생하기 때문이다. 처음 작품집을 읽을 때는 고통에 공감하고, 책을 덮을 때쯤엔 이 환멸을 결국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작품을 시작했을 때와 마칠 때에 느낀 감정과 비슷한 듯하다.
그는 표제작을 마무리하던 지난해 8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12월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작가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니까 신(神)이 사라진 느낌”이라며 “내 존재와 작품은 내가 이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시고 보니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절감한다”고 했다. 올해는 “사모곡 같은 성격의 작품을 쓸 것 같다”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시대 아픔 담는 건 윤리적 소명… 피할 수 없었다”
입력 2019-02-0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