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공급 물량 역대 최대인데… 소매가는 왜 ‘뚝’ 안 떨어지나

입력 2019-01-28 04:00

지난 25일 기준으로 국산 냉동삼겹살의 평균 소매가격은 100g에 1739원이다. 1년 전 같은 날의 가격(1755원)과 비교해서 16원 떨어지는 데 그쳤다. 공급량과 소비량이 그동안 일정했다면 이해가 갈 법도 한 성적표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에 공급된 돼지고기 물량은 수입산 급증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소비심리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정반대로 움직이면서 도매가격은 뚝뚝 떨어지는데, 소매가격은 제자리걸음이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걸까.

축산업계는 가격 왜곡 현상의 주범으로 수입산을 지목한다. 원산지 둔갑, 가짜제품 판매 같은 불법행위가 시장을 교란한다고 꼬집는다. 돼지고기 도매가격 하락이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가려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7일 한국농수산식품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판매된 국산 냉동삼겹살의 평균 소매가격은 ㎏당 1만7230원이다. 최근 1년간 소매가격은 이보다 높은 가격에 형성돼 왔다. 지난해 7월에는 ㎏당 2만2320원까지 치솟았었다.

일반적으로 공급 물량이 부족하면 가격은 오른다. 그런데 지난해 시중에 풀린 돼지고기는 138만3500t으로 전년(125만3000t)과 비교해 10.4%나 늘었다. 역대 최대 물량이었다. 공급이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수입산이 있다. 대한한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스페인 호주 등에서 수입한 돼지고기는 46만3500t에 이른다. 2017년(36만8000t)보다 26.0%나 증가한 규모다. 공급이 늘면서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내렸다. 한돈협회에선 축산농가가 돼지 1마리를 팔면 평균 8만7837원 손해를 봤다고 토로했다.

여기에다 수요는 썩 좋지 않았다.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 중 소비자의 외식심리를 살펴볼 수 있는 ‘외식비지출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하락 흐름이 뚜렷하다. 지난해 1월 94를 기록한 후 점차 떨어지다가 지난달 90까지 내려앉았다.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을수록 외식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은 늘고 수요가 위축됐는데도 소비자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가격을 왜곡하는 다른 요인이 있음을 보여준다. 축산업계는 요인 중 하나로 수입산 돼지고기의 시장교란을 꼽는다.

상대적으로 싼 수입산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지난해 1~10월 적발한 원산지 위반건수는 3509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919건(26.2%)이 돼지고기다.

고가에 거래되는 외국산 돼지고기도 소비자가격을 부풀린다. 시중에서 ㎏당 3만원 안팎을 호가하는 이베리코 흑돼지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베리코 흑돼지 가격은 지난 25일 기준 국산 돼지목살의 평균 소매가격(㎏당 1만6910원)의 배에 가깝다. 그러나 품질에 의문이 제기된다.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은 서울 음식점·유통매장 44곳에서 50개의 이베리코 흑돼지 제품을 수거해 판별검사를 했더니 5개 제품은 흑돼지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축산업계는 도매가격 하락분이 그대로 소매가격에 반영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 하태식 한돈협회장은 “돼지고기의 안정적 수급조절 방안이나 원산지 표시단속 강화와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