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마강래(47)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해 ‘지방도시 살생부’라는 책을 펴낼 때 적잖은 부담감을 느꼈다고 한다. ‘메시지가 너무 센 건 아닐까’ ‘지방에서 애쓰시는 분들의 힘을 빼는 누를 끼치지 않았을까’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까’….
엄살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방도시 살생부’는 전국의 상당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야박하게 느낄 만한 작품이었다. 인구절벽에 내몰린 지자체들은 축제를 열거나 산업단지를 조성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는데, 저자는 안타까움 섞인 비판을 가감 없이 쏟아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발 헛발질 좀 그만하라는 가시 돋친 주문이었다.
그렇다면 신작인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는 어떤 작품일까. 제목에서 이미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지고의 가치로 삼는 지방분권의 위험성을 지적한 책이다. 그런데 지방분권은 모두가 동의하는 슬로건 아니던가. 새 책을 펴낸 저자는 지난해 그랬듯 이번에도 ‘메시지가 너무 센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독자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
지방분권? 문제는 격차다
전작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 ‘지방도시 살생부’는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을 살릴 방안이 무엇인지 면밀히 살핀 문제작이었다. 저자가 제시한 처방전은 ‘압축도시’. 무분별한 외곽 개발을 멈추고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빽빽한 거점이 생겨야 인구유출을 막을 힘도 생긴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런 주장도 덧붙였다. “수도권과 ‘맞짱’ 뜰 만한 지방 대도시들을 키우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도 밥도 아닌 상태로 국가적 재정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신작을 소개하는 기사에 전작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랗게 늘어놓은 건 이 책이 전작의 후속작 성격을 띠고 있어서다. 문재인정부는 지방분권 의지가 강한 정부다. 지난해 내놓은 ‘자치분권 로드맵’에는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이라는 문구까지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 지방분권에 반기를 들 순 없는 노릇이다. ‘자치’와 ‘민주’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민주사회의 가치 아니던가. 저자 역시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문제는 격차다. 지방의 곳간이 거덜난 상태에서 분권을 강행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현재 지자체 간의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불평등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는 지니계수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근접하면 그 수준이 심하게 기우뚱하다는 걸 의미한다. 기초지자체 226곳의 지니계수를 측정하면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 값이 무려 0.49에 달한다(참고로 2016년 한국의 소득불평등 지니계수는 0.36이었다).
지방분권의 핵심은 재정분권일 것이다. 밑천이 있어야 뭐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가난한 지자체가 한두 곳이 아니고, 이들 지자체의 지갑은 갈수록 얄팍해지고 있다.
지자체가 지방세와 세외소득(지자체가 주차장 사용료나 건물 임대료 등을 통해 거둬들이는 수익)으로 거머쥐는 자체수입을 계산해보자. 부자 지자체(상위 20%)와 가난한 지자체(하위 20%)의 수입은 2001년 10.7배 차이가 났는데 지난해엔 16.4배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분권이 이뤄지면 어떤 상황이 나타날까. 부자 지자체와 가난한 지자체가 선보이는 공적 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가난한 지자체의 인구 유출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이 지방소멸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액셀러레이터가 되는 셈이다. 저자는 “재정분권은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것”이라며 “지금은 분권을 위해 격차부터 해소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지역국가의 시대
좌고우면하지 않고 전하려는 메시지를 향해 내달리는 필력이 보통이 아니다. 저자는 유명 입시학원의 족집게 강사처럼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씩 짚어낸다. 동어반복 수준의 이야기가 많지만 거슬리진 않는다. ‘강조를 위한 동어반복’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딴죽을 걸 만한 온갖 반박을 상대할 구체적인 반론들까지 빽빽하게 적어두었다.
결국 핵심은 이런 질문일 것이다. ‘분권보다 격차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가 내놓는 해법은 행정구역 개편이다. 이건 가장 간편한 해결책일 것이다. 1년에 각각 80만원 60만원 40만원 20만원을 벌어들이는 지자체 A B C D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정도면 지자체 4곳의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A와 D를, B와 C를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버리면 통합된 두 지역의 수입은 똑같이 100만원이 된다.
그런데 행정구역 개편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거구와 맞물려 있으니 정치인부터 득달같이 달려들어 반대할 게 불문가지다. 지역감정이나 주민들의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 이웃 동네와 통합돼 내 고향의 지명이 사라지면 셋방살이를 하는 기분을 느낄 테니까.
과거 많은 정부는 행정구역 개편에 나섰지만 처참하게 실패했었다. 이명박정부만 하더라도 100대 국정과제에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을 집어넣었고, 통합에 나서는 지자체에는 갖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통합을 신청한 곳은 18곳. 하지만 이런저런 반발에 부딪히면서 결국 통합에 성공한 지역은 2곳(창원+마산+진해, 청주+청원)밖에 없었다.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국토를 재편하는 게 지방소멸을 막을 해법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어떻게 새 판을 짜야 할까. 결론은 대도시권을 만들자는 것이다. 대도시권은 계란 프라이처럼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변 중소도시가 연합한 형태를 가리킨다.
저자는 서울과 지방의 광역시를 중심으로 전국을 7개 초광역권으로 나누자고 제안한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대한민국은 7개 지역국가를 보유한 나라가 된다. 결국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인데, 여기까지 설명하면 ‘선택과 집중’에서 배제당한 지역이 떠안을 아픔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전에 나서야 하는 것일까. 지방을 살릴 해법은 이것밖에 없단 말인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몽상에 가깝다고 깎아내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몽상에 가까운 상상이 결국엔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행동경제학에는 ‘앵커링 효과’라는 게 있다. 배가 닻(anchor)을 내리게 되면, 배는 결국 닻과 배를 연결한 로프의 범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저 멀리까지 닻을 던져놓은 뒤 지방 문제의 해법을 논의해보자는 뜻일 수도 있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돈 없는 자치·분권, 지방소멸 재촉한다
입력 2018-12-0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