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이야기] 병마와 아들 잃은 슬픔 이기고…

입력 2018-11-27 00:06

인생 경험이 목회에 도움이 될까. 교회 개척 11개월째로 접어든 지금, 확실히 목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독서와 일기쓰기 습관을 몸에 익혔다. 고3 때 결핵을 앓았는데 날마다 기침을 하다 각혈을 하면 입에서 핏덩이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결핵 3기라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을 생각했다. 주일학교에 놀러 다니듯 했던 내게 복음이 역사하는 순간이었다.

이른 새벽에 등교할 때, 늦은 밤 야간자습을 끝내고 귀가할 때 교회에 들러 기도하곤 했다. 그렇게 석 달 가까이 오늘도 살려 달라고, 오늘도 살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할 즈음 기침이 멈췄다. 각혈도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 갔더니 자연치유가 됐다고 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남은 인생, 하나님이 덤으로 주신 거라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 일생을 살리라 다짐했다.

치유를 경험했던 당시 나는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 신학교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를 꺾을 수 없어 직장을 선택했다. 그렇게 간 곳이 모 기독교 출판사 겸 잡지사였고 기자로 문서선교를 감당했다. 일은 행복했다. 뼈를 묻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1년을 일했다.

하지만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8년 전인 2000년 늦가을. 생후 6개월 된 아들이 침대와 벽 틈에 끼는 사고가 났다. 아이는 뇌사상태에 빠졌고 그렇게 3개월을 중환자실에서 누웠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아빠로서 병든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 인생의 허무를 경험했다.

그 무기력했던 아빠가 지금은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소망을 불어넣어주는 목회를 하고 있다. 한때 성도 2만명이 넘는 교회의 부교역자로서 문서사역을 감당했고 다른 교회에서는 1000명이 넘는 60세 이상의 시니어 그룹을 섬겼다. 이때 장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교회 장례문화와 장례설교에 대한 연구’로 학위 논문도 썼다. 결핵을 앓았던 경험을 살려 병상의 환우들에게 각별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전했다.

지난해 12월엔 경기도 수원에 교회를 개척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에 대한 경이로움과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 물질과 물자에 대한 귀중함 등이 새롭게 다가왔다. 교회는 기독교에 대한 주민의 차가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매주 정해진 시간마다 길거리 전도를 한다. 교회에서 생기는 소소한 일은 교회 홈페이지에서 글과 사진을 곁들여 매거진으로 제작한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 얻는 통찰은 칼럼으로 소개한다.

어려서부터 길러진 좋은 습관과 질병의 치유, 11년의 기자 경험, 10여년의 신학공부 그리고 15년 동안 다양한 교회에서 체험한 사역 경험은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주춧돌이 됐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감사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권영삼 광교사랑의교회 목사

약력=△1967년생 △'목회와신학' '빛과소금' 기자 △총신대 신대원 △분당우리교회, 사랑의교회 부교역자 △광교사랑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