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사청문회가 국회 파행 부르는 후진적 정치문화

입력 2018-11-16 04:00
“민생법안·예산안 놔두고 ‘일하지 않는 국회’… 선진적 인사제도가 정쟁 불씨로 전락하는 암담한 현실”

국회 본회의가 무산됐다. 여야는 15일 본회의를 열어 각종 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한 터였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보이콧을 선언하며 불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함께 반쪽 회의라도 개최하려 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결국 열리지 못했다. 어린이집 평가인증제 의무화를 위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등 민생 법안 90건을 처리하는 자리였다. 여야 간 쟁점이 별로 없어 순탄하게 통과될 수 있었던 법안들이 다시 정쟁에 발목을 잡혔다. 예산 심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는 이날부터 내년 예산안을 항목별로 감액·증액하는 예산소위를 가동할 계획이었는데 아직 소위 구성도 못했다. 예산소위에 각 당에서 몇 명이 참여할지를 놓고 대립하는 중이다. 민주당은 위원을 16명으로 늘려 비교섭단체 1명을 포함시키자고 한 반면 한국당은 15명을 고수하며 비교섭단체를 넣으려면 민주당 인원을 줄이라고 맞서고 있다. 법정 처리 시한을 맞추려면 30일까지 예산 심의가 끝나야 한다. 고질적인 국회 파행 속에서 예산안은 이번에도 초치기 부실 심사를 향해 가고 있다.

민생을 위한 법안도, 민생과 직결된 예산도 모두 국회를 거쳐야 효력을 갖는다. 이는 국회의 권한이기 전에 엄중한 의무다. 올해 들어 거의 매월 국회가 열렸지만 정쟁 속에 일하지 않는 모습은 매번 되풀이됐고 한 해를 결산하는 시기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20대 국회 들어 의사일정 보이콧은 부지기수로 벌어지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국민 보기에 부끄럽다. 시급한 민생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건 국회의 책무를 해태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파행의 불씨는 인사청문회였다.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조명래 후보자를 대통령이 환경부 장관에 임명하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반발했다. 인사에 대한 사과와 검증 책임자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해임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 인사는 8명이다. 그때마다 야당이 반발하고 정국이 경색되는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중요한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청문회 취지는 퇴색해가고 있다. 여권은 인사청문회 때문에 인물 찾기가 힘들어진 부작용을 토로하고 야권은 청문회와 상관없이 임명이 강행되는 무용론을 말한다. 선진적인 인사제도가 한국 정치판에서 후진적 시스템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정치 문화에서 아무리 협치를 외친들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지금 국회는 생산성이 너무 떨어졌다. 대화와 타협을 하는 곳에서 어느 한 쪽에 그 책임을 묻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 정치의 전반적인 수준이 그 정도인 것이다. 그런 국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여론의 채찍뿐일 듯하다. 일하지 않는 국회를 용납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