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일반국민의 지혜를 빌려 정책를 추진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가 무늬만 남게 됐다. 일반국민 의견은 참고사항일 뿐이고,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의견을 듣고 관료가 정하는 종전 프로세스로 사실상 돌아갔다. 교육부가 숙려제를 책임 회피 용도로 활용한다는 비판과 교육 정책의 복잡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 등을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제도개선을 위한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10일부터 진행한다고 8일 밝혔다. 정책 참여단은 전문가·이해관계자 30명으로 구성했다. 전문가 그룹은 학교폭력 전문성이 있는 교수, 학교폭력 업무 2년 이상 장학관·장학사, 3년 이상 학교폭력 업무 경력이 있는 민간 전문가, 학교폭력 관련 변호사 등이다. 이해관계자는 학교폭력 업무 3년 이상 경험 교원,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 학교폭력대책자치위(학폭위) 위원 학부모 등이다.
교육부 안은 나와 있다. 경미한 사안일 경우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사안을 종료하는 ‘자체종결제’를 도입한다. 교육부는 2주 미만의 신체·정신상 피해,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구된 경우, 지속적인 사안이 아닌 경우, 보복행위가 아닌 경우 등을 자체종결제 적용 대상으로 본다.
경미한 사안일 경우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 방안도 논의한다. 현행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처분은 수위가 낮은 1호 서면사과부터 9호 퇴학까지 9단계로 나뉜다. 교육부는 ‘경미한 사항’을 1∼3호(교내 봉사)로 보고 있다.
정책 참여단은 18일까지 권고안을 도출한다. 일반국민 의견은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본다. 일반국민 의견이 단순 참고사항이 된 이유는 첫 숙려 대상이었던 ‘학생부 신뢰도 제고 방안’ 경험 때문이다. 당시 교육부는 진보성향 교육단체 등과 협의해 정책을 거의 확정했었다. 그러나 숙려 과정에서 기존 학생부 기재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진보 교육단체들은 “정책숙려제가 공약 파기 수단으로 활용됐다. 정책숙려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국민 의견 수렴한다더니… 무늬만 남은 정책숙려제
입력 2018-11-09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