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백두산! 여기는 한라산….”
남측 선박은 5일 오전 10시6분쯤 인천 강화군 교동도 인근 해상에 북측 선박이 나타나지 않자 국제조난주파수로 교신을 시도했다. 북한은 10여분 후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해 해상에서 만나기로 했던 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30분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 선박은 오후 2시58분에 만났다. 짙은 갈색 방한복을 입은 북한 군인 10명은 해상에서 대기하던 남측 해양조사선으로 갈아탔다.
한강 및 임진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수로 조사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에 처음 시작된 것이다. 이번 조사는 이 수역 공동이용을 위한 군사적 보장 대책을 세우기로 한 9·19 군사합의에 따른 것이다. 남북의 민간선박이 이 수역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한 뱃길을 찾는 작업이다. 남북은 남측 김포반도 동북쪽 끝점부터 교동도 서남쪽 끝점까지, 북측은 개성시 판문군 임한리부터 황해남도 연안군 해남리까지 길이 70㎞, 면적 280㎟ 수역을 공동이용하기로 합의했다. 군 관계자는 “남북 민간 선박은 내년 4월부터 이 수역을 공동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날 조사는 북측 선박이 썰물로 인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지연됐다. 이곳은 수심이 얕고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 높이 차가 3∼7m에 이른다. 유속도 빠르다. 남북 공동조사단은 남측 선박의 조타실 간이탁자에 지도를 펴놓고 회의를 했다. 이어 남측 선박 4척을 타고 수로 조사에 필요한 부표를 북측 해상에 설치했다.
남북은 다음 달 11일까지 37일간 수로 측량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항해용 지도인 해도(海圖)를 내년 1월 말까지 제작한다는 목표를 잡았다. 해양조사선 등 6척의 배는 남측에서 제공키로 했다. 선박과 장비 임차료 등 4억1800만원도 통일부 남북협력기금으로 충당된다. 이동재 국립해양조사원장은 “우리 장비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역은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한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이 원칙적으로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남북 대치 상황 때문에 항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앞으로 이 수역에선 골재 채취, 관광·휴양, 생태보전 등 사업도 추진될 전망이다. 한 주민은 “남북 관계가 잘되면 편안하게 24시간 조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다만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틀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이들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안에는 골재 채취 관련 조항은 없지만 골재 판매 수익 배분 등 남북 경제협력 본격화에 앞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군 당국은 4일 오후 1시쯤 육군 22사단 관할 비무장지대(DMZ) 안에 산불이 발생, 북측에 사전 통보한 뒤 산림청 헬기 2대를 투입해 진화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 헬기 투입은 남북의 군사분계선(MDL) 일대 비행금지 합의가 지난 1일부터 이행된 후 처음이다.
김경택 기자, 강화=공동취재단 ptyx@kmib.co.kr
남북, 한강·임진강 하구 280㎢ 공동이용 ‘첫걸음’
입력 2018-11-05 18:15 수정 2018-11-05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