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전선업체 담합사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렸다. 심판정에 출석한 7개 기업은 저마다 대형 법무법인(로펌)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심의가 시작되자 B사 대리인으로 출석한 한 대형 로펌의 A변호사가 일어나 담합 혐의를 부인하는 변론을 했다. 곧이어 C사의 변론 순서가 오자 A변호사가 다시 일어섰다. 그는 담합 혐의를 부인하는 발언을 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담합 혐의를 인정했다. C사는 담합을 1순위로 자수해 과징금과 검찰 고발을 면제받는 리니언시를 활용하려고 했다. 이에 판사 격인 한 공정위원이 B사와 C사를 A변호사가 동시에 변론하면서 이해상충이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어떻게 법정에서 변호사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수 있느냐는 질책이었다. 하지만 A변호사는 B사 입장에선 담합을 부인하고, C사 처지에선 담합을 시인하는 변론을 고수했다.
A변호사처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두 당사자를 동시에 변호하는 ‘쌍방 대리’는 변호사 윤리와 부딪히기 때문에 변호사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쌍방 대리는 공정위 심판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4∼5개 대형 로펌이 공정위 주요 사건의 90% 이상을 사실상 과점하다보니 한 로펌이 특정사건에서 2∼3개 기업의 대리인으로 동시에 나서는 사례가 잦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백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되는 큰 사건이 터지면 업계 1위인 김앤장을 비롯해 대형 로펌들이 2∼3개 기업들을 나눠서 먹는다”면서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기업은 많고 몇몇 대형 로펌이 관련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생기는 기형적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경우 쌍방 대리한 사실이 밝혀지면 변호사 자격을 박탈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형 로펌의 윤리의식 결여에 대한 견제장치는 없다. 2016년에 있었던 과징금 감경 건이 대표적이다. 공정위 출신의 김앤장 소속 D변호사는 2016년 5월 성신양회의 담합사건과 관련해 공정위에 과징금 감경 신청을 했다. D변호사는 최근 3년간 적자를 기록한 재무자료를 제출하고 과징금 437억원 중 218억원을 감경 받는 데 성공했다.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공정위는 뒤늦게 D변호사가 허위 재무자료를 제출했다는 걸 확인했다. 과징금 감경을 취소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 D변호사 징계를 의뢰했다.
그러나 대한변협은 지난 8월 D변호사의 징계 요청을 기각했다. 기업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전달했을 뿐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D변호사는 별다른 불이익 없이 지금도 공정거래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이성규 기자
[단독] 대형로펌, 공정위 사건 싹쓸이… 담합사건서 ‘쌍방 대리’ 일쑤
입력 2018-10-11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