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가 동물권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사체를 박제해 전시한다는 소식에 “너무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대전도시공사는 결국 “퓨마 사체를 기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18일 오후 동물원 우리에서 나온 퓨마 ‘뽀롱이’는 사육사가 실수로 열어둔 문을 통해 나갔다가 4시간여 만에 사살됐다. 이 소식은 남북 정상회담을 제치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퓨마를 포획하려 했지만 마취제가 제대로 듣지 않아 시민 안전을 위해 사살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국립중앙과학관은 사체를 박제하고 싶다는 의사를 대전도시공사에 전했다. 멸종위기종인만큼 교육용으로 전시하겠다는 요청이었다. 그러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평생 동물원에서 자라 인간의 실수로 사살됐는데 죽어서는 자유롭게 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120여개의 퓨마 관련 청원이 게재됐고, 일부 연예인도 목소리를 보탰다. 동물단체 케어는 ‘#동물원가지않기’ 해시태그 운동도 벌이고 있다.
육식동물인 퓨마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 같은 논쟁이 번진 건 이례적이다. 개나 고양이를 넘어 식용 동물에까지 확산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임영기 동물구조119 대표는 “동물권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동물원의 실상을 고발하고 캠페인을 벌인 영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며 “동물쇼를 폐지하고 서울대공원이 돌고래를 방류하는 등의 변화를 지켜보며 시민 의식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고양이수의사회의 김재영 회장도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명으로 늘면서 동물원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이 커졌다”고 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교수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동물권에 대한 생각이 극적으로 달라졌다”며 “퓨마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현상도 그런 분위기를 보여 준다”고 전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인명피해가 없어 동물권 주장이 더 힘을 얻었다”며 “멧돼지처럼 사람을 해친 전례가 있는 동물이라면 이런 여론이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한계는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권’과 ‘동물복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상집 강원대 동물자원과학과 교수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둬야 한다는 동물권 문제와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동물복지 문제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야생이 완벽하게 동물에게 좋은지 묻는다면 알 수 없다. 사람과 동물이 서로 공간을 제공하며 같이 살아간다는 관점에서 관심을 가진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사살된 퓨마에 감정이입한 사람들 “잘못은 사람이 했는데…”
입력 2018-09-20 18:32 수정 2018-09-20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