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평양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에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부속합의서로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를 채택,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재가동하고 긴장 완화 조치들을 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동서해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과 개성공단 재개 협의 등 교류 협력을 증진키로 했다.
두 정상은 크게 나눠 비핵화, 남북 관계 진전, 군사적 긴장 완화 세 분야를 논의했다. 이 중 남북이 직접 논의할 수 있는 남북 관계 진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 분야에선 구체적으로 합의한 내용이 많다. 특히 성사된다면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분단 이후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방문이어서 남북 관계 진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비핵화는 남북 관계 진전만큼의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영구 폐기와 미국이 상응조치를 한다는 전제 아래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의 가능성만 언급했다. 물론 비핵화는 미국과 북한이 직접 담판을 지을 현안이어서 남북이 결론을 내거나 합의할 사안은 아니다. 남북으로선 충분한 의견 교환을 했겠지만 성과물을 내기엔 한계가 있는 부분이다. 두 차례 3시간여 가진 평양회담에서 두 정상은 아마 비핵화 문제를 가장 많이, 심도 있게 얘기했을 것이다. 당연히 공개하지 않은 부분도 많다. 문 대통령은 현재 중단된 북·미 대화를 재개시키기 위해 그동안 충분히 들었던 미국의 입장과 불만을 전달했을 것이며, 김 위원장의 생각과 향후 계획 등을 자세히 청취했을 것이다. 그래서 북·미 양쪽의 생각과 불만을 자세히 알고 있는 문 대통령이 다음 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가 아주 중요해졌다. 문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판단할 트럼프 대통령의 평가가 향후 남북 및 북·미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남북 관계 진전의 속도는 비핵화 조치와 엇비슷하게 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받은 최고의 환대와 남북 간 진전된 합의 내용이 있다고 한반도 평화를 구체적으로 담보하지 않는다. 두 정상의 자주적 해결 선언이 그대로 이행되리라고 보는 건 어리석다. 평양선언이 사실상 종전선언이고 비핵화 의지를 담았다고 청와대는 평가했다. 중요한 건 우리의 평가가 아니라 미국의 평가이다. 미·중·러·일이 있는 엄중한 국제 정세는 우리의 의지대로 상황이 흘러가게 놔두지 않는다. 평양선언이 구체적 성과를 내고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필요 이상의 포장이나 들뜬 감성보다 냉철한 계산과 외교력이 우선이다.
[사설] 남북관계는 진전, 비핵화는 더딘 평양선언
입력 2018-09-2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