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두 달여 만에 다시 대치 모드로 전환했다. 미국은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 카드를 꺼내들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국면 전환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정부 구상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미국은 대북 전면 압박을, 북한은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을 요구하며 우리 정부를 조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한·미 간 인식차도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29일 한·미 군사훈련 재개를 시사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의 발언 취지를 해명하는 데 주력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한·미가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며 “북한의 비핵화 진전 상황을 봐가면서 한·미 간 협의하고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훈련 재개 문제를 논의하자는 미국의 요청이 있었는지에 대해 “요청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 유예 결정은 애초부터 올해 훈련에만 적용됐던 것으로 그 이상 추가 논의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외교부도 “매티스 장관의 발언은 한·미 간 기존 합의의 연장선상”이라며 “다른 합의가 이뤄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 정부 내 분위기는 상당히 강경하다는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단 매티스 장관의 발언은 북·미 협상의 무게중심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주축으로 한 대화파에서 대북 압박을 강조하는 매파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매티스 장관에 이어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2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제재와 비핵화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헤일리 대사는 대북 제재를 주도하는 강경파 인사다. 최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비핵화 협상 판을 깰 수 있다고 협박하는 내용의 편지를 폼페이오 장관에게 보낸 뒤 미 정부 정책 기조가 압박 쪽으로 급전환한 모습이다.
북한은 “어떤 제재나 압박도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대화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인 요구만 강요한다면 적대관계를 해소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9월 방북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미국도 동의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미국의 동의 사항이라기보다는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인 만큼 미국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또 “북·미 간 대화 모멘텀은 지속되고 있다”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아직 유효한 카드”라고 강조했다.
제재 문제를 놓고 한·미가 이견을 보였던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8월 말 개소가 사실상 무산됐다. 북·미 갈등과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행사(9·9절)를 준비하는 북측 내부 사정이 두루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너무나 다른 한국과 미국의 대북 경협 속도는 더욱 도전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며 “양국이 간극을 좁히고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한·미 관계를 긴장시키는 심각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권지혜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hk@kmib.co.kr
[이슈분석] ‘대화’와 ‘압박’ 사이… 점점 벌어지는 韓·美
입력 2018-08-30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