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어장이 망가지도록 방관할 수 없다.” “모래가 없으면 건물을 어떻게 올리란 말이냐.”
남해와 서해의 바닷모래 채취 기한 연장을 둘러싼 논란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민들은 기한 연장을 결사반대한다. 바닷모래를 더 퍼 올리면 어장 황폐화가 가속화되면서 ‘물고기 씨’가 마른다고 하소연한다.
건설업계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바닷모래를 캐지 못하면 당장 건설 현장에서 공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골재 가격도 급격히 오르게 된다. 이 때문에 ‘연장 허가권’을 쥔 정부는 1년 넘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14일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정부는 경남 통영과 전북 군산 앞바다의 바닷모래 채취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통영 앞바다의 경우 지난해 1월 만료된 채취 기한을 2020년 8월까지 연장하는 걸 논의 중이다. 오는 12월까지 채취 가능한 군산 앞바다의 경우 올해 채취 물량을 확대하는 게 안건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바닷모래 채취는 지역별로 서너 차례 기한을 연장해 왔다. 지난해까지 통영과 군산 앞바다에서 각각 6만2357㎥, 4만2588㎥의 바닷모래를 퍼올렸다. 당시만 해도 어민 반발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민들의 생존권이 걸려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국립수산과학원의 ‘해사채취 친환경적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바닷모래 채취는 바다 바닥에 서식하는 저서성 어류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보고서는 특히 가자미류와 장어류, 까나리의 산란 장소가 훼손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최근 어민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가 바닷모래 채취를 반대하게 만든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 역시 반발하고 있다. 모래는 시멘트와 섞어 만드는 레미콘의 주원료다. 건설업계는 모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공사 기한을 맞추는 데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가격 상승 우려도 있다. 지난해 1월 통영 앞바다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금지된 뒤 ㎥당 1만∼2만원을 오가던 모래 가격은 지난 3월 기준 최대 3만7000원까지 치솟았다.
양측 입장이 팽팽하지만 정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 바닷모래 채취 여부를 결정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통영 앞바다의 경우 어장에 미치는 영향 평가를 보고 연장 여부를 확정키로 했다.
그러나 해양환경관리공단이 지난달 정부에 제출한 영향평가 보고서 초안에는 이런 내용이 자세히 담기지 않았다. 해수부 관계자는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어업에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식으로 보고서가 나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바닷모래를 채취하는 업체들의 빈번한 ‘부정행위’도 정부가 선뜻 연장 결정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감사원이 지난해 2월 바닷모래 채취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를 감사한 결과 바닷모래 채취 업체 20곳은 355회에 걸쳐 채취량을 속여 왔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118만7141㎥를 채취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채취량은 131만1251㎥에 달했다. 12만4110㎥를 몰래 퍼 올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일관된 신호를 주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레미콘 업계는 안정적 공급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정확한 신호를 줘야 수입 여부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토로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더 채취 땐 물고기 씨 말라” VS “모래 부족해 불가피”
입력 2018-08-14 18:39 수정 2018-08-14 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