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의 안이함이 BMW의 오만함 부추겼다

입력 2018-08-14 04:04
12일 주행 중이던 BMW 승용차가 또 불에 탔다. 올해 들어 38번째다. 이 중 26%인 10건이 리콜과 긴급 안전진단이 진행되는 8월에 일어났다. 이달에는 거의 날마다 BMW 한 대씩이 불타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리콜 대상도 아닌 차량에서 엔진 화재가 벌써 9대나 발생해 리콜의 신뢰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BMW포비아’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이처럼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3일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빠른 시일 내에 소상하게 밝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BMW코리아의 자체 조사 보고만 기다렸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언론의 질책이 이어지자 뒤늦게 민관 합동조사팀을 발족했고 차량 운행 중지 명령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러니 화재와 관련한 가장 초보적인 의문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는 16대가 불에 탄 5월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리콜 대상에서 빠진 가솔린 차종의 화재에 대해 “평균적인 차량 화재 빈도를 넘지 않는다”며 리콜 배제를 사실상 묵인했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은 BMW의 오만함을 더욱 부추겼다. BMW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한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의 결함을 2016년에 이미 파악했다는 의혹이나, 미국 등에 비해 국내 리콜이 늦어진 이유 등에 대해 BMW 측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과 해외 시장 차량 결함률이 비슷하다고만 할 뿐 차종, 횟수 등은 밝히지 않았다.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은 13일 더불어민주당이 마련한 긴급 간담회에서 사과의 뜻으로 머리를 숙였지만 사고에 대한 보상, 차량 사용자들이 겪는 불안과 불편에 관한 대책 등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BMW 연쇄 화재 사고는 수입차 관련 행정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왔지만 사고 예방과 사후 처리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여실히 보여줬다. 객관적인 기준이 떨어진 허술한 리콜 시스템, 우선 조사권이 없는 자동차안전연구원의 한계와 인력 미비 등은 이번 사태를 통해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관련 법 정비도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