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발목잡는 ‘정치 논리’…청와대-김동연 ‘삼성 방문’ 난기류

입력 2018-08-06 04:04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위워크 서울역점에서 열린 혁신성장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靑, 이재용 면담 우려 전달 “투자 강요로 느낄 수 있어” 일부 참모 삼성에 알레르기
金 “혁신성장에 도움 필수” 이례적 입장문 내고 반박… 오늘 예정대로 이재용 만나
삼성 보는 다른 시각서 비롯, 최악 실업난 속 우려감 커져 … 삼성은 투자계획 발표 보류


경제는 심리에 크게 좌우된다. 예민한 시장의 흐름과 반응을 예측하고 차단해야 할 경제정책에 정치논리가 끼어들면 시장은 흔들린다. 하지만 정치논리가 경제컨트롤타워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졌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면담을 놓고 청와대가 사실상 딴죽을 걸었다. 최저임금 논란에 이어 두 번째 ‘난기류’다. 최악의 청년실업, 자영업자 대량폐업 위기 상황에서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는 데 따른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이번 갈등은 ‘삼성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에서 빚어졌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을 위해 삼성그룹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김 부총리는 6일 오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아 이 부회장을 면담할 계획이다. 다만 예정됐던 삼성의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는 보류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5일 “지난주에 청와대와 물밑 논의를 하면서 청와대의 우려를 전달받았지만 기존 대기업 방문과 같은 행사 형식을 갖출 예정이었다. 하지만 3일 ‘구걸 발언’ 언론 보도가 나온 뒤 입장을 바꿨다”고 전했다. 한 언론사는 이날 낮에 “청와대가 김 부총리에게 ‘정부가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김 부총리는 같은 날 저녁 이례적으로 A4용지 1장 분량의 ‘입장문’을 냈다. 그는 “삼성 방문과 관련해 의도하지 않는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유감”이라며 “일부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구걸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면서도 삼성의 투자 발표와 관련해 김 부총리를 만류한 부분은 인정했다. 국민이 기업의 투자 발표를 정부가 강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삼성이 투자 계획을 준비했으면 자발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발표하면 된다”며 “김 부총리가 방문한 날에 맞춰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 오히려 정부가 (투자를) 요구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는 제언을 김 부총리에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김 부총리가 다른 그룹 총수들을 만났을 때엔 잡음이 없었는데 유독 삼성 방문만 논란이 되는 것은 청와대의 ‘삼성 알레르기’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가 삼성에 민감한 배경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재벌개혁 정책 기조가 깔려 있다.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노이다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할 당시에도 청와대 내부에서 찬반 격론이 있었다. 이 부회장의 뇌물죄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는 점도 고려됐다.

삼성은 곤혹스러워한다. 다른 그룹 총수들이 김 부총리와 회동할 때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한 전례에 맞춰 일정을 준비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삼성은 투자 계획을 추후에 발표하고, 계획대로 이행한다는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기업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어이없고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경제컨트롤타워와 청와대 참모진의 불협화음은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삼성 알레르기’를 가진 청와대 일부 참모진과 ‘소득주도성장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소신을 가진 김 부총리의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김 부총리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전권을 주든지, 아니면 같은 신념을 가진 부총리를 세워야 이런 사태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강준구 유성열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