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세대’. 취업과 연애, 여가 등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른바 N포세대의 용어는 청년들을 짓누르는 무력감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 신조어는 쓰인 지 수년이 지나 일상적 용어가 됐다. 청년들이 포기하는 것들은 연애 결혼 출산 등에서 출발해 희망과 삶까지 확산돼 안타까운 실정이다.
최근 서울 성북구 월곡로 성복중앙교회(길성운 목사) 청년부인 ‘신실인 청년위원회’는 20∼30대 청년 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의 주제는 ‘청년의 아픔을 치유하는 교회’이다.
조사에 따르면 청년 중 57%는 과외 및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주거형태로는 절반 이상인 55%가 자취 및 하숙을 하고 있다. 수입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에 대해 응답자 중 23%는 수입의 40% 이상, 17%는 20% 이상이라고 밝혔다. 40% 이상의 청년들이 수입의 2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것이다.
부채는 학자금(43%)과 생활비(34%) 주거비(14%) 순으로 나왔다. 청년들은 월세(48%)와 보증금(26%) 학자금 대출이자(26%)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봤다.
지난 12일 이 교회에서 기독청년 세 명을 만나 그들의 애환과 기도제목을 들어봤다.
월세 때문에 시험도 포기하고 늘 알바해야
4년제 대학에서 미디어를 공부하는 여대생 박수림(가명·21)씨는 신입생 때부터 학기뿐 아니라 방학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박씨는 “매달 월세와 생활비가 나가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부모님이 중국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박씨는 혼자 학교 인근에서 자취하고 있다. 거실과 방이 한 칸인 12평(40㎡)짜리 집에서 사는데 보증금 500만원에 월 65만원씩 낸다. 대학생이 매달 내기 버거운 금액이다. 그동안 사업하는 아버지가 매달 월세 일부를 지원해 줬는데 사업이 기울어 이마저 어렵다. 방음이 안 되고 닭장 같은 원룸으로 이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근거린다고 한다.
신입생 때부터 카페와 식당 등에서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카페에선 많은 음료의 조리법을 외워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식당에서 주방보조를 하는 게 쉽다”고 했다. 주 3회 4시간씩 식당에서 일하면 한 달에 40만원을 손에 쥔다.
가장 큰 문제는 시험기간에도 일해야 한다는 것. 박씨는 “시험기간에 일하고 공부하면 너무 피곤해 공부가 잘 안 된다”며 “그땐 며칠만이라도 아르바이트 대타를 구해야 하는데 못 구하면 사실상 시험을 포기해야 한다.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최근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가느라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박씨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한다.
등록금 마련하느라 논문 준비 차일피일 미뤄져
역사 교사를 꿈꾸며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김진규(가명·26)씨는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기에 주거비보다는 등록금 마련이 큰 부담이다. 매 학기 100만원 장학금을 받지만 400만원의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김씨는 “군 전역 후 복학할 즈음 아버지가 실직하시고 형도 대학생이라 등록금이 같은 시기에 필요해 경제적 어려움이 심했다”면서 “최근엔 어머니가 어깨 인대 수술을 받느라 병원비가 급하게 필요했다”고 밝혔다.
김씨 역시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생활비와 등록금 마련 때문이다. 안정적인 장기 아르바이트를 원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방학 땐 마트 등에서 물류 알바를 했는데 이 같은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쉽지 않다. 단기 아르바이트는 주말이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주말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늘 시간에 쫓긴다는 김씨는 일하느라 논문과 임용시험 등 학업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논문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대학원 수료 후 2∼3년 뒤에 졸업하는 선배들이 앞으로 제 모습이겠지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친구들처럼 방학 때 가는 여행은 당연히 포기했고 흔히 말하는 스펙 관리도 제대로 못 하고 있어요. 학점관리 등 최소한의 것만 하게 되더라고요. 등록금 마련이 안 되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취준생’(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으로서 부담이 되네요.”
기초생활수급자 선정돼 그나마 거주비 해결
공기업 입사를 준비한다는 이준호(가명·24)씨는 지난해 아버지가 오랜 지병으로 소천하고 어머니도 요양병원에서 암 투병을 하고 있다. 다행히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장학금을 받기 때문에 등록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문제는 주거비와 생활비였다. 지난해 청년들의 주거난 해소를 위해 마련된 ‘LH청년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한 뒤부턴 주거비 부담이 줄어들었다. 더 이상 학교 기숙사에 머물 수 없어 잠시 하숙했던 시절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씨는 “5평(17㎡)가량 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방음이 안 돼 위층의 부부싸움 소리까지 들렸다”며 “그 좁은 방도 매달 42만원을 내야 해 힘들었다. 이제 주거비 걱정은 한시름 놓았는데 주변의 가난한 친구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주거비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런 청년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을까. 장근성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는 “교회가 청년의 삶을 진심으로 돌보기 위해선 먼저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학사관 운영이나 장학금 지원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청년을 지원할 수 있다. 교회가 청년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청년들이 교회 공동체에 지체 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갑 청년사역연구소장도 “교회가 다음세대 문제에 구체적 행동으로 접근한다면 청년들이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건강한 일꾼으로 양육될 것”이라며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이웃에게 선을 행한 것처럼 청년의 회복을 위한 교회의 손길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그늘에 잠시 가리워도, 청년들아! 끝내 빛나라
입력 2018-07-20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