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사이드] 30대 중독자 5개월간 ‘프로포폴 쇼핑’ 안 걸린 이유는

입력 2018-07-18 04:03

30대 마약류 중독자가 환자 행세를 하며 여러 병원에서 마약성·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았지만 의료 시스템에 걸리지 않았다. 병원 간 환자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중복 투약을 감시하는 시스템에 허점이 있어서였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이모(36)씨는 지난 2월부터 이달까지 약 5개월간 병·의원 22곳에서 수면내시경 검사를 요구해 향정신성 의약품 프로포폴, 아네졸 등을 상습적으로 투약 받았다. 그는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도 체중감소 등 이유를 대며 검사를 요구했고 의사들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씨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한 번이라도 더 투약 받으려고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따로 검사받기도 했다.

이씨는 다른 의료기관 26곳에서도 항문·침술치료 등을 받고 치료비 2100여만원을 내지 않고 도망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씨를 사기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했다. 그는 과거에도 마약을 투약하다가 붙잡혀 실형을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가 여러 의료기관에서 쇼핑하듯 향정신성 의약품을 투약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의료기관 간 진료정보 교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가 원했거나 처음 진료를 봤던 의료진이 다른 의료기관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만 진료정보가 공유되므로 모든 환자의 정보를 알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마약류를 중복해서 처방받을 경우 경고가 뜨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에도 맹점이 있었다. DUR에는 2013년 7월부터 동일성분의 마약류가 포함된 의약품을 중복 처방하면 팝업으로 주의 문구가 뜨도록 돼있다. 하지만 하루 동안 여러 차례 마약·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 받을 경우에만 중복 사실이 확인될 뿐 일주일이나 한 달 간격으로 같은 약을 처방 받으면 주의 문구가 뜨지 않는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약국을 대상으로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처럼 의료기관에서도 마약류 관리가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