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당국 늑장에… 뒤집힌 난민선서 100여명 실종”

입력 2018-07-02 04:01
리비아 인근 지중해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표류중이던 난민들이 30일(현지시간) 절박한 표정으로 스페인 구호단체 프로악티바 오픈암스 대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구조선 입항을 허가했다(아래 사진). 하지만 29일 또다른 난민선은 도움을 받지 못해 100여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리비아 해안경비대원들이 이날 난민선 전복사고로 사망한 여자아이들의 시신을 트리폴리 해안가로 옮기고 있다. AP신화뉴시스

유럽연합(EU)이 정상회의에서 난민 정책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EU군 당국이 난민선이 보낸 구조 요청을 받고도 늑장 대처하는 바람에 100명 이상이 실종되는 참사가 벌어졌다는 NGO 단체 주장이 나왔다. 사고 해역에서 가까운 이탈리아 정부는 NGO 구조선의 입항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다시 한 번 경고했다.

AP통신은 30일(현지시간) 스페인 난민 구호단체 프로악티바 오픈암스(POA)가 EU군 당국과 리비아 해양경비대 사이에 난민 100명 이상이 탑승한 고무보트가 조난됐다는 무선 교신이 오간 사실을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교신이 오간 것은 29일 오전 8시쯤이었다. 주변 해역 정보를 전송하는 나브텍스(Navtex navigation system)에 공식 구조요청이 올라온 것은 최초 조난 신고가 있고 9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선박사고 골든타임으로 보는 1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구조 요청이 전파된 것이다.

뒤늦게 사고사실을 파악한 POA는 로마 해상구조협력본부(MRCC)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MRCC로부터는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으니 추가 지원은 필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리비아 해양경비대는 전복된 배에서 난민 16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생존자는 난민선에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모두 125명이 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현지 언론 리비안익스프레스는 생존 난민들이 리비아 동부 도시 타조우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실종자는 10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일부는 리비아 해안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리비아군 관계자는 현지 해역에서 빨간 원색 계열의 옷을 입은 두어 살가량의 여자아이 시신 3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POA 설립자 오스카 캠프스는 “POA 난민 구조선이 오랫동안 이 해역에 있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그 누구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POA 난민 구조선 아스트랄호의 리카르도 가티 선장도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그동안 난민 구조 작업에 비협조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가티 선장은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POA 의 전화에 응답한 적이 한 번도 없고 구조 활동 중인 POA에 현장을 떠나라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전복 사고가 발생한 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끝난 EU 정상회의도 난민 유입 통제를 강화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EU 정상들은 “무절제한 난민 유입을 막고 기존 모든 경로와 새로운 경로에서의 불법 이주를 단호히 저지하고자 한다”며 “난민 재배치와 이주 등 난민센터와 관련한 모든 조치는 회원국의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밝혔다. EU 회원국이 더 적극적으로 난민 유입을 통제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NGO 단체의 난민 구조 활동도 어려워졌다. 몰타가 28일 NGO 소속 선박의 입항을 금지한 데 이어 이탈리아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30일 “NGO가 구조한 난민은 이제 이탈리아에 들어올 수 없다”며 “이들 NGO의 활동은 더 이상 합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