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연합(EU) 정상들이 밤샘 협상 끝에 합의문을 도출했다. 난민 심사를 위한 ‘난민 센터’ EU 국가 내 설치, 난민들의 EU 지역 내 이동 제한 등 이민 통제 강화 원칙이 담겼다. 다만 합의문 자체가 구체적인 조치를 담지 못한 데다 난민 유입에 대한 유럽 국민들의 반감도 날로 커지고 있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EU 28개국 정상들은 벨기에 브뤼셀 정례 정상회의에서 난민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고 영국 BBC방송 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U 정상들은 입국자의 난민 여부를 심사하고 부적격자를 돌려보내는 난민 센터를 유럽 지역 안에 두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에 센터를 설치할지는 명시하지 못한 채 개별 국가의 ‘자발적’ 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난민 신청자가 EU 역내를 자유롭게 옮기지 못하게 제한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전날 저녁 시작한 협상은 이날 아침까지 무려 9시간 넘게 진행됐다. EU 정상들은 당초 첫날 오후 회의를 마치고 사전 조율한 정상회의 선언문을 발표하려 했다. 하지만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돌연 난민 문제를 거론하며 선언문 채택을 반대하면서 밤샘 협상이 시작됐다. 콘테 총리는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과 ‘동맹’ 연립정부 수반으로서 그동안 난민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다. 콘테 총리는 정상회의 종료 후 “(합의 내용에) 만족한다”면서 “협상은 길었지만 이제 이탈리아는 혼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난민 문제 때문에 국내에서 위기에 몰렸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CDU)과 연정을 이룬 기독사회당(CSU)은 반(反)난민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기독사회당 당수이자 독일 난민정책 수장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난민 문제를 두고 메르켈 총리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EU 정상들의 이번 합의가 유럽 난민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될 수 있을지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BBC는 “이번 합의는 난민의 이주와 정착을 EU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토록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어느 나라가 난민 센터를 짓고 난민을 받아들일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 노선도 유럽 정상들에게는 골칫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11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유럽 국가들이 안보비용을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나토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만큼 나쁘다. 미국에게 돈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고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EU 정상회의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유럽 정책 때문에 나토가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난민 센터 자발적 설치”… EU 정상들, 애매한 합의로 ‘불씨’
입력 2018-06-30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