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과 관련해 장고를 거듭한 끝에 지난 15일 마침내 입장문을 냈다.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경우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검찰이 대법원에 요청한 자료는 법원행정처 컴퓨터 하드디스크, 양승태 전 대법원장·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의 하드디스크다. 검찰이 원본에 집중하는 건 ‘디지털 포렌식’ 등의 기법을 통해 확보한 자료라도 당사자가 작성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은 2015년 7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에서 425지논·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아 파기 환송하면서 이같이 판시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사용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지난해 10월 디가우징(강력한 자기장으로 자료를 완전히 지우는 것) 처리됐고 박 전 처장의 하드디스크도 디가우징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통상적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다. 폐기 당시는 양 전 대법원장의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이던 시기다. 증거인멸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대법원은 이미 공개한 행정처 문건 410개의 파일만 검찰에 넘겨줬을 뿐 행정처 핵심 하드디스크는 제출을 거부했다. “의혹과 관련이 없거나 공무상 비밀이 담겨서”라고 했다니 어이없다. 의혹과 관련이 있고 없고는 검찰이 판단할 부분이다.
사법부에 대한 수사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법원이 땅에 떨어진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이전 사법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절연하는 것이다. 낡은 조직 논리에서 벗어나 법 앞에 겸허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김 대법원장의 공언대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모든 증거자료 제출이 그 첫걸음이다. 국민의 눈이 사법부를 향하고 있다.
[사설] 대법원, 약속대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
입력 2018-06-2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