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이 2018 러시아월드컵 베이스캠프를 차린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엔 보고슬로프스코예 묘지가 있습니다. 이곳에선 빅토르 최가 잠들어 있습니다. 그는 1962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엔지니어였던 고려인이었고 어머니는 교사였던 러시아인이었습니다.
빅토르 최는 ‘키노(KINO)’라는 록그룹을 결성해 아름다운 선율과 자유분방한 음악을 선보여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죠.
빅토르 최는 1990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대규모 단독 콘서트를 열었는데, 관중은 공식 집계로 6만2000여명에 달했습니다. 빅토르 최는 그러나 그해 8월 어느 날 라트비아에서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맞은편에서 오던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로 숨졌습니다. 일각에서는 그가 전체주의 체제의 부조리를 비판했기 때문에 암살당했다는 얘기도 나왔죠. 그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러시아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으니까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빅토르 최의 팬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2002년 빅토르 최의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모스크바 예술광장에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석조비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2001년 취재차 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경제난에 시달리던 러시아엔 암울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러시아월드컵을 취재하기 위해 17년 만에 다시 찾은 러시아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풍요보다 더 놀란 것은 사람들이 자유분방해졌다는 겁니다.
러시아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자 러시아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에 빠졌습니다. 권동석 주(駐)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는 “러시아 사람들이 자국 팀의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열광하는 걸 보니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에 변화의 씨를 뿌린 사람이 빅토르 최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글·사진 김태현 스포츠레저부 기자 taehyun@kmib.co.kr
[굿모닝 러시아] 러시아에 변화의 씨를 뿌린 빅토르 최
입력 2018-06-26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