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든 檢-방패 든 法… 사법농단 수사 본격 기싸움

입력 2018-06-25 04:04

檢, 재배당 하루 만에 선제 대응 관련자 하드디스크 통째 요구
“뭘 그렇게 숨길 게 많나” 압박… 미흡 땐 압수수색 카드 꺼낼 듯

대법 “밀리지만 않을 것 ”곤혹 檢의 여론전 강수에 불쾌감 역력
압수수색 영장 기각 맞설 수도… 법 위배 여부 검토 후 자료 제출


‘사법부 재판거래 의혹’(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과 수사 대상인 대법원 간 기 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은 수사 재배당 하루 만인 지난 19일 수사 자료의 광범위한 임의 제출을 요구하며 선제 대응을 펼쳤고 대법원은 당혹감에 빠졌다. 검찰의 압박이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대법원도 수세적으로만 대응하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법원은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조속히 제출해 달라는 검찰의 요청에 24일까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도록 임의제출 범위를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이어 “우리가 무엇을 제출할지 혹은 제출하지 않을 것인지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의 ‘장고(長考)’는 검찰의 요구에 대한 당혹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대법원은 이번 주 일부 자료를 선별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사건 연루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내놓는 것에 대한 고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검찰에 넘겨줄 경우 검찰이 사법권 남용과 관련한 추가 의혹을 포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사태를 대법원이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우려도 크다.

검찰은 “뭘 그리 숨길 것이 많느냐”는 반응이다.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칼을 빼든 이상 검찰도 물러설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던 수사도 아니고 사실상 대법원에서 해달라고 한 것 아니냐”며 “우리로서는 국민적 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파헤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자료 제출이 부실할 경우 검찰은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 카드’를 빼들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장으로 이 사건을 고발한 조승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지난 22일 고발인 조사에서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개인 컴퓨터, 전화 등 관련 자료를 모두 압수수색해야 한다’고 검찰 측에 촉구했다”고 말했다.

당분간 검찰의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21일과 22일 임지봉 서강대 법한전문대학원 교수, 조 교수를 각각 고발인 신분으로 조사한 데 이어 25일에도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을 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지난달 3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 전 행정처 차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한 재경지법 간부는 “수사의 사전 정지 작업에 불과한 고발인 조사를 연이틀 대놓고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여론전으로 법원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내부 반발이 고조되면 법원 측이 수세적으로 일관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검찰이 행정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등 ‘강수’를 둘 경우 일선 법원이 독자적으로 영장을 기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이뤄질 전·현직 행정처 관계자에 대한 전방위 조사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검찰의 자료 요구에 일정부분 선을 그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판사는 “혐의 사실 관련성에 대한 구분 없이 디지털 증거를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것은 영장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며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달라는 식으로 영장 청구를 한다면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문동성 이가현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