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축구하는 여자”…‘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펴낸 김혼비

입력 2018-06-25 04:04
축구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낸 김혼비씨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한 손에 축구공을 든 채 앞을 바라보고 있다. 10년 넘게 회사를 다닌 직장인인 김씨는 “제 시간의 60%는 직장에 묶여 있지만 제 기쁨의 60%는 축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평범한 회사원이자 5년차 주부, 축구는 남자들의 운동이란 편견 뻥 날려주는 이야기 들려줘
“공의 생기에 호흡을 맞춰야 해요 내 맘대로 안 되니 참 어렵고 그래서 마음을 수양하게 돼요”


러시아월드컵을 보고 있노라면 축구야말로 남자의 운동 같다. 선수, 감독, 코치 모두 남자고 현장 관중도 남자가 대부분이다. 여자 월드컵이 따로 있긴 하지만 남자들의 월드컵 열기에 비교할 수준이 못된다. 그런데 ‘여자도 미칠 듯 축구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신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민음사)가 나왔다.

아마추어 여자 축구선수로 축구 에세이를 낸 저자 김혼비(37·필명)씨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필명은 축구광인 영국 소설가 닉 혼비에서 따왔단다. 쇼트커트 머리에 상당히 큰 키. 축구선수 분위기를 확 풍겼다. 하지만 그는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이자 5년차 주부다.

“제 시간의 60%는 직장에 묶여 있지만 제 기쁨의 60%는 축구에서 나온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체육 소녀’였다. “중학교 때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인기였죠. 점심시간마다 신나게 농구나 배구를 하다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도꼭지 물에 헹구고 책상에 앉곤 했어요.”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건 브라질 ‘축구 황제’ 호나우두 덕분이다. 2006년 월드컵 무렵이다. “어느 날 TV에서 호나우두가 ‘스텝오버’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양다리로 공을 번갈아 짚으면서 수비수를 교란시켰죠. 그는 스텝오버 기술로 우아하게 골을 넣었어요. 그 장면을 마음속 깊이 담았죠.”

축구가 무턱대고 공을 뒤쫓는 운동이 아니라 운율이 깃든 운동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현듯 축구의 그 리듬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졌다. 2015년 한 여자 축구팀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축구 이야기를 유머가 깃든 날렵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게 이번 책이다. “연습에 간 첫날 우리 팀이 할아버지 팀과 연습을 했는데 서로 주고받는 말이 보통이 아닌 거예요. 70대 할아버지가 저한테 계속 잔소리를 하니까 우리 주장이 와선 그분한테 ‘신입한테 왜 시비 걸어요? 말년에 진짜 이렇게 치사하게 살다 갈 거예요?’라고 소릴 치더군요. 경기 후엔 아줌마들끼리 야한 농담을 하는데 전 웃다 주저앉고 말았어요.”

그는 축구가 가진 뭔가 터프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느꼈다. “언니들이 처음 6개월만 꾸준히 나오면 그다음엔 못 빠져나간다고 했는데 벌써 4년째 하고 있는 절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축구의 매력이 궁금했다. “농구나 배구 같은 다른 구기는 손으로 공을 잡아서 일단 공의 ‘숨’을 죽여요. 그런데 축구에선 공을 손으로 잡으면 안 돼요. 축구에서 공은 정지하지 않고 계속 떠다녀요. 살아 있어요. 선수는 이 공의 생기(生氣)에 호흡을 맞춰야 해요. 이게 참 어려워요. 공이 내 맘대로 안되니까요. 그러니까 마음 수양을 하게 돼요(웃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축구는 ‘영혼의 구기’다. 그러나 축구장은 모든 사회 분야가 그렇듯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남자 선수들의 ‘맨스플레인(mansplain·남성이 우월적 태도로 여성에게 뭔가 가르치려 드는 것)’이 장난 아니다.

“우리 팀에 있는 국가대표 선수 출신에게도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남자들이 많죠. ‘국가대표를 한 남자들은 표가 나는데 여자들은 그렇지도 않다’는 둥. 그런 말 지껄이면 안 참아요. 게임 들어가서 공 가지고 다리를 확 꺾어 줍니다.”

여자들이 축구를 취미로 삼는 것은 세상이 남녀로 구획한 것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사회 전체로 보면 ‘여자가 ○○을 한다고?’라는 문장에서 ○○에 들어갈 단어의 숫자를 줄여가는 것이 어쩌면 사회운동 아닐까요? 우리 팀과 많은 여자 축구팀 동료들이 여기에서 ‘축구’라는 단어 하나 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죠.”

이 책은 한마디로 축구는 남자들의 운동이란 편견을 ‘뻥’ 날려주고 축구와 거리가 먼 ‘언니’들의 엉덩이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축구 권장도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