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은 한때 한국교회의 키워드였다. 목회의 핵심이자 본질로 칭송받았다. 실제로 제자훈련을 실시하는 교회 모습은 건강한 목회 현장으로 각인됐다.
1980년대 고 옥한흠(서울 사랑의교회 원로) 목사의 ‘평신도를 깨운다(Called to awaken the laity)’운동은 전국 초교파 목회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 기치를 든 이후, 전통적 목회의 강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사랑의교회는 제자훈련의 본산으로 자리매김했고 국제제자훈련원의 출범과 함께 제자훈련은 국경을 뛰어넘어 아시아 미주 남미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다.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임했다.
부임 초기 필자의 목회 현장은 사분오열과 갈등의 현장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부정적인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주변에서 도무지 해결될 수 없다고 입을 모으던 현장이 질서를 회복하고, 새롭게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교회로 탈바꿈하게 됐다. 그 중심에는 제자훈련 목회가 있었다. 지금도 필자는 한 치의 의심 없이 외친다.
“제 목회의 본질은 제자훈련 정신입니다. 한 생명을 돌아보고, 한 영혼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만약 제자훈련이 아니었다면 우리 교회는 틀림없이 공중분해 됐을 겁니다.”
그런데 수년 전 제자훈련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제자훈련의 본산이며 국제제자훈련원을 설립한 사랑의교회에 불어 닥친 내·외풍이었다. 과거 사랑의교회 강단에서 미소 지으며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던 낯익은 얼굴부터 종교자유정책연구원까지 합세해 “사랑의교회 타도”를 외친 것이다.
예배당 건축으로 시작된 갈등이 담임목회자의 논문표절 사건으로 확대되더니(학위를 수여한 학교에서는 학위를 인정하였음에도) 전임자와 후임자 지지 그룹의 갈등, 무지막지한 소송, 심지어 담임목사 횡령 의혹까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이 한국교회, 특히 제자훈련을 실시하는 목회자들을 공격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랑의교회와 제자훈련 정신을 확고하게 붙잡은 교회들은 요동치 않았다. 어떤 목회 현장보다 따뜻하고, 안정적이고, 감사가 넘쳤다. 물론 사랑의교회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교회에 부정적인 파장을 일으킨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의교회와 국제제자훈련원, 그리고 각 지역의 제자훈련 중심의 교회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본질을 더 굳게 붙잡게 됐다. 더욱 겸손함을 추구하고 한국교회를 섬기는 자세를 견지하게 됐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교회로 서게 됐다.
인간사에는 예외 없이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성경에 나타나는 참선지자 미가야처럼 신실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던 시대에도, ‘어용’ 선지자 시드기야가 큰소리치며 떵떵거리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자훈련 하는 목회자들이 예외 없이 참선지자 미가야의 행보를 걷기 바란다.
제자훈련은 목회의 본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명령으로 모든 교회에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모범은 오직 주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는 소용돌이치는 세상 가운데서도 주님의 소원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제자훈련이 성경적, 역사적, 목회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면 초지일관 그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제자훈련의 모델 교회가 겪는 진통의 시기 동안 함께 염려하고, 고뇌하면서 오직 주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구했다. 그리고 제자훈련 목회가 예수님의 ‘목회 종합선물세트’라는 걸 계속 경험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제자훈련의 어두운 그림자는 속히 물러가길 바란다. 나아가 빛으로, 오직 은총의 빛으로 임하기를 바란다.
주님 은총의 빛 가운데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이 ‘사랑의 사도’로 변한 것처럼 제자훈련의 목회 현장에서 수많은 사도 바울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린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제자훈련의 빛과 그림자
입력 2018-06-1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