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여고생 알바하기 위해 인터넷에 이력서 올렸더니 수상한 업체 연락 줄이어
구직 미성년자 신상정보 성인 채용하는 업체에 노출… 성폭력으로 이어질 우려도
고등학생 A양(18)은 지난달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구인·구직 포털 사이트 ‘알바몬’에 이력서를 올렸다. 이틀간 수상한 업체들에서 연달아 연락이 왔다. 피팅 모델을 구한다며 시급 5만원 정도를 제시한 업체 네 곳은 무슨 촬영을 어디서 하는지 물어도 알바비만 언급하며 알려주지 않았다. ‘토킹 바’(직원이 손님과 대화하고 경우에 따라 스킨십도 허용하는 술집 혹은 카페)로 추정되는 곳에서도 접근해 왔다. 미성년자 채용 때 필요한 부모동의서는 모두 없어도 된다고 했다. A양은 “이력서에 나이를 밝혔는데 이런 연락이 와서 어이없었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10대를 겨냥한 아르바이트가 성폭력 위험에 무방비 노출된 것으로 22일 나타났다. 피팅 모델이나 ‘비공개 촬영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성인을 채용해야 하는 업체들이 구인·구직 사이트를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미성년자에게 손쉽게 접근하면서 범죄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유명 구인·구직 포털 사이트에서 구직 중인 미성년자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기업회원’으로 인증을 받고 일정 금액만 내면 구직자의 이력서를 모두 열람할 수 있었다. 이날 기준 알바몬을 통해 기업회원이 열람할 수 있는 미성년자(14∼19세)의 이력서는 1만5545건이었다. 알바천국에서는 미성년자(15∼19세) 이력서 1만1432건을 볼 수 있었다. 피팅 모델 구인 전문 사이트인 M업체의 경우 로그인 절차 없이 미성년자 모델의 인적사항과 사진, 신체 사이즈 등을 공개하고 결제를 하면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법적으로 성인을 채용해야 하는 업체들은 이 점을 악용해 미성년자 구직자에게 연락을 취한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알바몬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토킹 바 업체는 해당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구직자의 이력서만 열람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 외 ‘19금 아르바이트’에 대해서는 제재가 없다”며 “(제재를) 차차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알바천국 관계자도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본인인증만 하면 기업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미성년 구직자들의 정보가 이런 업체들에 노출되는 상황은 성폭력 위험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최근 성범죄 피해를 고백한 유예림양도 페이스북에 “지난 1월 모델로 활동하면서 뭐든 열심히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며 “(그러던 중) 서울 합정역 쪽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양예원씨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달아 “18살 때 비슷한 연락을 받았다”며 “옷과 가방을 줄 테니 성인용 속옷을 입고 모델을 하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미성년자들이 성범죄 타깃으로 지목돼 위험에 빠진 것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미성년자 신상정보가 노출된 이력서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고, 연락할 수 있는 업체에 대한 기준이 거의 없다는 건 분명히 문제”라며 “다른 성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현욱 여성변호사협회장은 “성인을 채용해야 하는 업체가 미성년자에게 쉽게 접근해 일자리를 구하고 싶은 마음을 악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투데이 포커스] “시급 5만원”… 이력서 올린 미성년자에 ‘19禁 알바’ 유혹
입력 2018-05-23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