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어느새 80달러 근접… 달러 강세 맞물려 불안 증폭

입력 2018-05-23 05:03

어느새 80달러가 눈앞이다. 연초 50달러대를 예상했던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상승 흐름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정정 불안에 따른 원유 공급량 축소 우려에 뿌리를 둔다. 국제유가 급등이 달러화 강세와 함께 맞물리며 신흥국 금융 불안을 증폭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도 ‘달러화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6월 인도분은 전 거래일보다 1.4% 뛴 배럴당 72.24달러로 마감했다. 2014년 11월 이후 3년6개월 만에 최고치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6월물도 80달러 턱밑에 근접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가격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77.06달러까지 올랐다. 80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최근 국제유가는 주요 기관의 예측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3대 원유의 평균 가격을 배럴당 50.17달러로 예측했다가 지난달에 62.31달러로 올려 잡았다. 세계은행(World Bank)도 65달러로 평균치를 높였는데, 최근 유가는 이보다 10달러 이상 더 높은 수준이다.

유가 급등은 통상 신흥국에 호재로 해석돼 왔다. 신흥국 가운데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자원수출국이 많기 때문에 유가 상승은 이들 국가의 경상수지 개선 효과로 이어진다. 다만 세계 경기 호조로 원유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지금처럼 미국의 이란 핵제재, 베네수엘라 정부 불인정과 같은 정정 불안으로 원유 공급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선 ‘물가 불안’이 먼저 나타난다. 유가 평균치를 대폭 올려 잡아야 하는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통화긴축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특히 ‘나 홀로 호황’을 보이는 미국 경제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마저 가중되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간표가 더 앞당겨질 수 있다. 달러화는 금리 인상 기대감으로 가뜩이나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이런 흐름이 더해지면 신흥국에서의 자본유출 흐름이 더욱 거세지게 된다. 국제금융센터는 “과거 연준이 일시적 유가 상승을 추세적 상승으로 오인하고 기준금리를 인상해 경기 둔화를 야기한 전례가 수차례”라고 밝혔다.

미국이 원유 대체제인 셰일가스 시추를 늘려 유가 하락을 유도할 수 있지만 세계 경기가 내년 이후에 확장세를 멈출 것이란 우려가 있어 이마저도 불확실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정 불안이란 단기요인 때문에 셰일가스 시추가 본격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약 본격화돼도 유가가 급락할 수 있어 신흥국 투자심리는 더 얼어붙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제금융센터는 “통화정책 정상화와 성장 모멘텀 둔화 우려 속에 국제유가 상승이 가세할 경우 대규모 신흥국 자금유출을 촉발할 수 있다”면서 “한국도 글로벌 차원의 달러 유동성 경색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